[시론] 현 정부에 바라는 천만 이산가족의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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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산가족은 김대중 대통령 당시 2000년 8월 15~17일에 남북한 이산가족 중 선발된 100가족이 서울과 평양에서 가진 짧은 이산가족상봉의 순간을 너무나 귀한 추억으로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다. 

필자는 1950년 당시 전남 강진군 성전면에 위치한 성전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필자의 친형 오영재는 3학년에 재학 중이었는데 학교 측의 압력도 있어 형은 의용군에 입대해 장흥군의 모 초등학교에서 기초 훈련을 받은 후 월북했습니다.

그리고 무소식의 50년이 지났습니다. 이에 우리는 서울의 모식당에서 50년만에 가진 이산가족의 만남으로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오영재는 이북에서 군 복무를 마치자 제대자들은 기차를 타고 각자의 고향으로 가게 되었으나 그는 갈 곳이 없어 무작정 평양역에 내려 광장에서 오랫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흘러 형은 한 조립공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에서는 정기적으로 회보가 발행되었습니다. 형은 회보에 가끔 투고를 하고 싶었으나 편집담당부서에서는 내용이 긴 원고는 게재를 거부하는 분위기여서 짧은 시를 투고함으로 게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오영재 회사원은 회사로부터 능력을 높게 평가받아 재정지원을 받고 대학을 진학, 졸업하게 되었고 시집도 발행하는 등 훗날 시인 중 최고 단계인 계관시인까지 되었습니다.

그의 시집에 나온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 시는 상봉 당시 일간 신문에도 방송에도 소개 되었습니다.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가지 말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도.

이날까지 늙으신 것만도 이 가슴이 아픈데, 너 기어이 가야 한다면 어머니 앞으로 흐르는 세월을 나에게 다오. 내 어머니 몫까지 한해에 두살씩 먹으리.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 시인은 3일간의 이산가족 상봉을 마치고 평양으로 간 후 2011년 갑상선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이제 필자는 오 시인의 딸 오은하를 몹시 보고 싶습니다. 오은하는 평양학생소년궁전에서 교사로 근무했는데 은하는 퇴임시 받은 은반지를 평양 출입 미국기자를 통해 필자에게 보내왔습니다. 이에 필자는 통일부의 요청에 의해 그 반지를 도라산전망대의 전시실로 보냈습니다. 필자의 수중에 있는 것보다는 통일부의 요청도 있어 국가의 기관에 기증하는 것이 더 지속성이 있을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은하와 같이 도라산전망대에 가서 은반지를 같이 보며 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제 천만 이산가족은 새 정부에 간곡히 요청합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가졌던 이산가족 상봉 프로젝트를 현 정부에서 다시 추진해 주시기를 간곡히 건의 드립니다.

지난 7월 4일자 조선일보(105 조선일보 A3) 기사를 소개합니다. 기사내용은 ‘북과 대화 단절은 바보짓’의 제목하에 ‘(흡수 통일은) 엄청난 희생과 갈등을 수반한다’며 ‘가능하면 (북한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득 되는 길을 가고, 동질성을 조금씩 회복해 가야 한다’는 내용이었으며 기사 끝에 이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북한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안보실, 국정원에 여러 얘기를 해 놓았다”면서 “나중에 결과로 말씀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 이 기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오형재 장로

<신장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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