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으로 끌려 들어가는 한 마리 소처럼 아내의 손에 붙들려 예배당으로 끌려 들어가는 한 새신자가 있었다. 예배 분위기가 잘 맞는 옷처럼 편안한 것도 아니고 여러 곡의 찬송이 불려지고 있었지만 어느 한 곡 아는 노래가 없이 생소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새신자 예배당에 들어간 시간부터 예배가 끝나는 시간까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내가 왜 그리 우느냐고 물었지만 딱히 대답할 말도 울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민망했던지 이 새신자 아내에게 하는 말, “니네 교회 최루탄 뿌렸냐?”
윤 장로 가정은 이 새신자 김 아무개씨를 전도하고자 새신자의 부인 양 권사와 함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중재기도를 했다. 윤 장로의 부인 진 권사와 양 권사의 합심 중재기도가 응답되어 쉽지 않아보이던 이 새신자 김 아무개가 처음 예배에 참석하고 했던 “니네 교회 최루탄 뿌렸냐?”는 이 말을 우리 교인들은 뭘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교회에 처음 오는 성도들은 예배당 의자마다 올려져 있는 휴지곽을 보고 의아해 하곤 한다. 우리 교회 예배엔 기쁨과 웃음이 많지만 못지 않게 눈물이 많다. 한소망교회 초기 물새는 지하 예배실 걸레로 물을 닦아내다가 울고 또 울어서 그런가보다. 나는 그날 하나님께 약속을 했었다. 교인들의 가슴 아픈 상처를 씻어내는 목회,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드리는 목회를 하겠노라고. 우리 교회는 목사도 교인도 잘 운다. 기뻐서 울고 은혜 받아서 울고 상처를 토해내다가 아파서 울곤 한다. 찬송을 부르다가 울고 말씀을 듣다가 울고 성령 수양회, 치유 수양회를 경험하다가 성령과 함께 곧잘 운다. 성령도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과 함께 중보하며 우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렇게 ‘최루탄 예배’를 처음 경험했던 김 아무개 성도는 이후 윤 장로가 이끄는 목장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믿음을 갖게 되었으니 이제는 일이 잘 풀리고 병도 낫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국립암센터 검진 결과, 그는 12cm 크기의 직장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덩어리가 너무 커서 당장 수술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병원은 3개월 동안 방사선 치료를 통해 종양이 줄어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윤 장로의 목장은 이 병과의 싸움을 ‘영적 전쟁’으로 선포하고, 매일 합심해 중재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사선 치료가 진행된 3개월 동안, 목장은 정확히 100번의 기도회를 드렸다. 그리고 마침내 수술 날짜가 잡혀 국립암센터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 담임목사였던 내게 병실로 와서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내와 함께 병원을 방문해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했다. 우리도 너무 간절해 기도 후 병실을 나서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다른 교회 성도들로 보이는 분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목례를 해주었다. 그때 아내가 내게 물었다. “여보, 직장암이라는데… 그 직장이 어디야?” 내가 짓궂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사람마다 다르지. 나는 한소망교회가 직장이야.” 엘리베이터 안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그날 저녁, 윤 장로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왔다. “목사님! 김 아무개 성도 정밀검사 결과, 암덩어리가 깨끗이 사라졌답니다!” 김 아무개 성도 수술 전 정밀 검사를 해보니 12cm 암덩어리가 깨끗하게 사라졌다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 소그룹에서 하는 합심 중재 기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