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아나스포라(Anaspora)(귀향)의 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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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 디아스포라의 비망록

나의 디아스포라, 70여 년이 넘도록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 고향이 어디멘고? 언제? 왜? 고향 집을 떠나왔던고?

인생은 사회적 존재이다.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생태적 여건이나 사회과학적 차원의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와중에서 개인으로서의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혼자이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 과연 나는 누구인가를 회고한다.

나는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한평생을 유랑(디아스포라)의 세월로 생애를 마감하게 되었다. 아홉 살(1946년) 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38선을 넘어 자유 대한의 땅으로 탈출했으나 끝내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김일성 독재자의 치하에서 축출당해 사선(死線)(38선)을 넘어와 서울에서 유랑의 세월을 시작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바로 6.25 남침으로 부산으로 피난길에 오르는 등 생사의 운명을 머리에 쓰고 살아온 것이다.   

해방의 기쁨은 잠시였다. 월남(越南), 김일성의 6.25남침, 중공군의 참전으로 1·4 후퇴 등 생사의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유랑 족속으로서의 애환의 역사는 개인의 질곡이 아닌 한민족의 집단적 상황이었다. 

나는 59년 자유신문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다. 그 해 학보병으로 육군에 입대해 최전방의 수색중대에서 1년 6개월 동안 근무하고 귀휴(歸休) 조치를 받았다. 휴전상태인 최전방의 고지에서 적진을 감시하는 초소병으로 근무한 것이다. 남방한계선에서 중대장의 엄격한 지휘체계하에 초소에서 적진을 감시하는 임무가 내게 주어졌다. 최전방 초소에서 겨울을 보내고, 우리 부대는 양평으로 부대(사단)이동을 했다. 양평에 주둔하는 부대는 수도방위를 목적으로 하는 임무를 띤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귀휴 2개월 여를 앞두고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유사시 수도 진압의 임무를 갖고 있던 우리 부대는 혁명군과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했다. 우리 부대는 수도 서울로 혁명군을 진압하기 위해 상부의 하명을 대기하다가 결국 출동하지 않았다. 혁명군이 승리한 것이다.

이처럼 나의 병역(兵役)과정을 소상히 밝히는 것은 나의 인생행로에 미친 정신적 단련에 대한 서사(敍事)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그리운 내 고향/돌아가고 싶구나, 우리집으로/나의 디아스포라diaspora 70년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이미 부모 형제는 모두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네/나는 천애(天涯)의 고아가 되었네/그 한세월 나는 외톨박이 신세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통치에서 해방/조선독립 만세를 외치던/3·1 운동의 그 함성이 되살아나는/해방의 환성도 잠시/무신론자, 김일성의 공산주의자로부터 쫓겨난 신세/우리 가족의 디아스포라는 시작되었다/디아스포라, 그 끝이 아직 안보인다

나는 간절하다/내 고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나의 아나스포라anaspora의 꿈/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을 넘어/나의 디아스포라 70년을 넘어/나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다. (아나스포라-서막(序幕))

내 한평생의 꿈은 도로(徒勞)에 그치고 말았다. 고향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은 끝내 이룰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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