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상고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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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모두 역대 국왕이 죄수의 일을 걱정한 것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 중요한 일로 여겼다. 천변지이(天變地異), 가뭄, 장마 그 밖의 재앙과 액운이 있을 때는 반드시 사면을 실시했으며 하나는 이로써 하늘의 뜻에 답하고, 또 하나는 이로써 휼수(恤囚)의 뜻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신라 성덕왕 시대와 같은 때는 그 한 대 동안에 십수 회에 걸친 은사를 시행한 적이 있었고, 역사책에도 ‘당시에 농사가 흉년이 들고 재이(災異)가 자주 나타나면 번번이 사면을 시행하여 거의 그냥 지나가는 해가 없었다’라고 하고 있을 정도였다.

상고에는 기술한 바와 같이 감옥의 설비는 있었으나 그것은 일반 관아(官衙)와 같이 관제상 독립된 지위를 가지고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순히 체포, 감금, 심문 및 과형(科刑)의 권한을 가지는 관아의 부속물에 해당하는 데에 지나지 아니했다.

따라서 감옥에는 하나의 관아로서 고유의 명칭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영어(囹圄)라고 하거나 또는 감옥이라고 칭하는 데 그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관할하는 관아는 백제에서는 고이왕 때에 제정한 조정좌평(朝廷佐平)이고, 신라에서는 651년(진덕왕 5년)에 사법기관으로 제정한 좌이방부와 667년(문무왕 7년)에 사법기관 확장을 위해 증설한 우이방부였다. 그리고 좌, 우이방부는 신라의 태봉시대에 이르러서 이를 의형대(義刑臺)로 바꾸었다.

백제에는 금고형이 존재했다. 『당서(唐書)』 백제의 조 중에 ‘법은, 반역을 한 자는 주벌(誌伐)하고 그 집의 재산을 몰수한다. 사람을 죽인 자는 노비 셋을 보내어 속죄하게 한다. 아전(衝前)이 뇌물을 받거나 도둑질하면 3배로 변상하게 하고 종신토록 금고(禁錮)한다.’ 262년(고이왕 29년)에 제정된 영(令)에 ‘무릇 벼슬아치로 재물을 받거나 도둑질을 한 자는 3배의 금액을 징수하고 종신금고에 처한다.’ 아마도 백제에서 처음으로 금고제가 정해졌다. 금고제에 대해서는 이를 감옥에서 집행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따라서 본 제도가 존재한 사실로부터 감옥 존재의 하나의 증거로 할 수 있다고 설명하는 자도 있지만 이것은 오늘날의 형명인 금고와는 크게 취지를 달리하고, 단순히 당해 죄수의 거소를 한정해 함부로 출입을 금지한 것이다. 마치 일본의 구 막부시대의 폐문(閉門)과 유사한 것으로 감옥에서는 아니다.

김성기 목사 <세계로교회>

 한국교도소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법무부 사)새희망교화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새희망운동본부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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