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 냇가에 흐르는 물은 갑자기 먹장 같은 구름이 몰려오면 천둥 번개 치는 소낙비를 맞이한다. 이 소나기는 한 번이 아니고 소나기 삼 형제라고 해서 한 번 오고 나면 두세 번 지나가기 때문에 삼형제라 불렀다고 한다.
이 소낙비를 만나면 시냇물이 갑자기 불어나서 개울가에 가득 차 흐르게 된다. 그러면 물속에 뛰어들어 친구들과 미역감으면 어찌나 시원하고 좋은지 더위는 완전히 없어지고 오히려 추울 정도로 몸이 떨릴 때도 있었다.
지금은 인구증가, 주택증가, 재개발 등으로 그러한 모습은 사라지고 개울물은 오염되어 놀 수가 없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개울물에서 물살 가르며 살던 민물고기들이 떠오른다.
비 온 뒤에 친구들과 함깨 개울물에 가서 맑은 물에서만 볼 수 있는 챙기름챙이, 모래무지, 파라지 등 고기잡이를 나선다. 고기 그물과 바구니를 준비하고, 고기 배를 물면서 잡힌 고기는 시냇가 둑 밑에 솥을 걸어 놓고 매운탕으로 끓여 큰 정자 밑에 둘러앉아 먹었던 천렵놀이는 지금도 잊히지 않고 눈에 선하다.
지금에서 생각하니 이러한 풍경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해가 지고 나면 땅금이(어둑어둑함) 일어나 길을 잘 분간 못할 때는 항상 같이 가던 소를 앞세우면 소가 알아서 집을 찾아 바로 가곤 했다. 저녁 식사는 앞마당에 모기를 쫓기 위해서 곁불을 해 놓고 그 앞으로 멍석을 펴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오이상추 비빔밥을 먹는 것이 최고였다. 후식으로는 옥수수, 감자, 참외였고 보통은 밀가루 수제비에 감자 한두 개로 배를 채우는 것으로 살았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가을의 수확 준비로 새끼를 꼬아 가마니치기(짜기)가 일쑤였다. 나는 피곤함을 참고 한 짝을 치고 나면 밤 열 시가 되어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또다시 하루의 일과가 되풀이되면서 살았다.
무더운 날씨에 친구들과 같이 산기슭으로 등하교를 하다 보면 매미와 여치 소리에 끌려서 매미를 잡아 보려고 가시넝쿨을 헤치며 가다 보면 쐐기란 놈에게 쏘이기가 일쑤고, 한 마리 잡으면 너무 좋아서 쐐기 물린 자리가 아픈 것도 가신 듯했다. 또한 소낙비가 갑자기 오면 도랑물이 넘치고 개울물이 허리까지 차면 형들이 손잡고 건네주고 했었다.
학교 공부가 끝나면 곧바로 집에 와서 바쁜 농사일을 도와야 했고 숙제는 저녁 시간에 틈을 타서 했으니 이것이 나의 근면생활의 기초적인 훈련의 단련이 되었다.
최석산 장로
흑석성결교회, 수필가, 사진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