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그렇게도 푸르렀던 나뭇잎은 어느새인가 울긋불긋 붉게 물들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온통 산야가 오곡백과로 무르익으면서 황금 물결치는 가을이 들녘을 보여준다. 밭에는 농작물, 논에는 익어가는 벼 이삭 어느 것 하나 늦출 수 없이 서리가 내리기 전에 수확해야만 하는 농작물로 가득 차 있다. 그야말로 바쁘게 몰아치는 가을의 들판이다. 왜냐하면 모두 다 손으로 직접 작업해야 수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농가구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던 실정이었다.
이같이 바쁜 수확이 끝나면 추수한 볏짚으로 지붕을 새로 덮는 초가집 지붕을 엎을 볏짚이엉을 엮어서 지붕을 덮으면 초가집들이 새 옷을 입는 것이다.
이때쯤 되면 동네 아낙네들은 입동을 중심으로 겨울 양식 반찬을 위해 무, 배추를 씻어 배추김치를 담그느라 차갑게 얼은 손을 호호 불며 분주했다. 그러면서 벼를 논에서 낫으로 베어 집 마당으로 가져다가 타작을 하고 타작한 벼는 멍석에 펴서 말리느라고 조석으로 안채 뜰에 놓았다가 다시 햇빛이 나면 마당에 내다 널고 하는 수작업이 조석으로 이루어졌다.
물론 지금의 건조방법은 기계화되고 건조도 옥상 같은 곳을 이용도 하지만 그 시절 태양 빛에 건조시켜 찐 쌀의 맛은 더 좋을 수밖에… 그렇게 바쁜 가을 기온 차이가 차차 심해진다.
겨울
첫눈이 온 것도 모르고 일어나 보면 밤새 내린 박속 같은 흰눈이 문틈을 환하게 비추면서 겨울맞이 첫눈이 반긴다. 눈이 내린 날에는 농사일에 사용될 새끼 꼬기와 배 담을 가마니 짜기가 일쑤이고 마을마다 야경꾼을 조직해 야경(夜警) 활동을 하게 된다. 막대기 방망이를 둘로 마주쳐서 소리 나게 하며 집집마다 돌면서 알리는 방범 활동을 하지만 가끔은 좀도둑도 생긴다. 물론 여름에도 과일밭에 가서 참외나 수박을 한두 개 따다가 함께 나눠 먹었다.
겨울에는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닭을 훔쳐다가 닭볶음탕을 해서 나눠 먹고 다음 날에는 소문이 나서 누구의 짓이라는 것도 알게 되면 마을 어르신들한테 꾸지람을 듣고 용서받기도 했으며 인심 좋게 이해해 주고 넘어갔던 생각이 난다.
또한 울타리 밑 양지바른 곳에 참새잡이 덫을 놓고 참새들이 먹이를 찾아와서 앉으면 잡아서 화롯불에 둘러앉아 구워 먹는데, 겨울 추운 날씨에 참새고기 맛은 일품이고 이것이 농촌 겨울 풍경이었다.
갑자기 밤사이에 눈이 많이 내리면 온통 마을 전체가 흰 눈으로 덮이고 이웃 간에 통행도 안 된다. 이럴 때는 하루 종일 넉가래로 눈 치우기 작업을 했으며 지금에 와 생각하니 한시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농부들에게 고맙게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성서에 보면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라고 했는데 노동이야말로 신선한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노동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과 신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도록 한 것을 감사드린다. 자연에 순응하고 그곳에 묻혀서 살아왔던 지난날의 사계절 농촌 생활을 상기해 본다.
최석산 장로
흑석성결교회, 수필가, 사진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