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중고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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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옥서는 995년(성종 14년)에 이르러 이름을 바꾸어 대리사(大理事)로 불렀으며, 평사(評事)라고 하는 관청을 설치하고 형무를 관장하도록 했다. 문종왕 때에 이르러 다시 고쳐 전옥서라 칭하고 령(令) 1인, 승(丞) 2인과 그 외에 아전으로 사(史) 3인, 기관(記官) 3인을 두었다. 1308년(충렬왕 34년)에 이르러 형조가 언부(識部)로 개칭되었을 때 전옥서는 헌부에 통합되었기 때문에 감옥은 다시 독립관청으로서의 존재를 상실하게 되었다. 충선왕 때에 이르러 령(令)과 승(承)을 없애는 한편 대리사라는 명칭까지도 관제상에서 삭제되고 말았으나, 1362년(공민왕 11년)에 대리사를 부활시키고 다시 영(令)만을 두었다.

이와 같이 전옥서는 대리사로 개명되거나 또는 다른 관청에 병합되어 일시 폐지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명의(名義) 상에 그쳤고, 감옥의 존재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그 무렵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었던 감옥은 시옥(市獄)이라 일컬었던 것 같다.

신우(辛福)시대에 위사(衛士)의 정원을 정할 때 궁문(宮門), 능(陰), 사원(寺院)의 숙위장교를 합해 377, 군(軍) 111, 고서(庫署) 각 소의 장교는 315, 군(軍) 131로 정하고, 시옥(市獄) 여러 곳의 점검장교(宿衛將校)는 126, 군(軍) 347로 정한 것에 의해 보더라도 각 도읍(都邑)에 설치되어 있는 감옥은 이를 시옥(市獄)이라고 불렀고 경계와 수위는 군사의 임무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고려시대에는 감옥이 새롭게 만들어 진 적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역사상으로 보이는 것은 고려사 제강(提網)에 1106년(숙종왕 11년) 11월 안옥(犴獄)을 새롭게 했다고 하는 기술이 하나만 있고, 더구나 그 위치, 구조, 형태 등에 대해서는 문헌상 아무런 표현하는 것이 없어 완전히 불명확하다. 그렇지만 틀림없이 서울의 감옥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그 형식에 대해서는 말할 것까지도 없이 예로부터 중국을 모방한 원형식을 채용해 온 적도 있고, 당시 당에서도 원옥(圓獄)이었기 때문에 이래저래 원형식을 채용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성기 목사 <세계로교회>

 한국교도소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법무부 사)새희망교화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새희망운동본부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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