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만 있지 않고 때때로 우리 가슴을 분노가 지배하는데 이 폭발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자고로 말이 많다. 참을 인(忍)자 세 개를 항시 앞에 두고 분노를 참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라왔지만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못하면 사람답지 못하다’는 말도 들어왔다. ‘거룩한 분노’는 양심의 표출이라 하고 분노가 사회를 변화시킨다고도 한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시절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거론했던 장면 중의 하나가 예수께서 사역의 마지막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 안에 들어가셔서 거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판을 둘러엎으시고 노를 발하시던 사건이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앞세워 은혜를 배제하는 위선자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시면서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질타하셨다. 이것이 거룩한 분노의 예라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예수와 같은 완전하고 완벽한 인격을 갖지 못한 우리 인간들로서는 어떤 때 무슨 일에 분노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자제심의 방패로 스스로를 달랠 것인가의 고민에 처하게 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는 말씀 또한 따라다닌다. 우리 사회의 전통에서도 불의, 부당한 일을 당할 때에 제대로 분노해 정의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는 대신 공동체의 평화를 기한다는 명분으로 엉거주춤 타협하며 주저앉게 만드는 사례들이 제시된다. 이런 것들은 보수, 진보를 구분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소위 ‘격노설’이 주요한 정치이슈의 하나로 되어 특별검사가 임명되고 윤씨와 더불어 전 국방장관과 군 장성들이 수사대상이 되고 있다. 2022년 7월, 금년처럼 전국에 홍수가 터졌을 때 경북 예천지역 수해로 실종된 민간인의 수색에 투입됐던 해병 사단의 한 사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해병대 수사단이 그 책임소재를 수사해서 해병 사단장과 여단장을 과실치사로 입건할 것을 상신했다. 당시 이를 보고받은 윤 대통령이 책임범위가 과도히 확대되었음을 지적하고 직속부대 장교 몇 사람만 입건되도록 조치한 것인데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격노’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 사건의 줄거리이다.
누구의 잘못으로 채수근 일병(사망후에 상병으로 추서)이 죽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당연한데 수사가 정치 이슈로 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으로 해병대 최고위급 장교가 처벌당하지 않도록 조치한 것인데 여기에 무슨 사적인 구명운동 의혹이 제기되고 당시 야당이고 현재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격노설을 주장하며 정부를 궁지로 몰았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같이 생각해 보자.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고 급류의 강물로 병사들을 투입한 현장 지휘관의 오판을 추궁하면 되는 것이지 과연 대한민국 해병대를 맨 위서부터 두드릴 일이었는가?
해병대 수사단장은 사단장을 수사대상에서 배제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항명죄로 기소되었으나 무죄가 확정되었다. 소신대로 행동한 수사단장에게 잘못이 없겠으나 그의 결정을 뒤집은 대통령의 판단에도 마땅한 이유는 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은 격한 성격을 드러내 처리과정에 개입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음으로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다치지 않아야 할 군인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말았다.
주일학교 아이들을 지금 가르치고 있다면 이렇게 얘기하겠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고 책임을 지면 된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