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희 목사, 만주 복음 전파와 순교의 역사
민족애와 신앙으로 한국교회에 도전 남긴 삶
그의 둘째 아들 순옥 역시 해방 이후에 공산당원에게 총살되었다. 그는 본래 공산당원이었다. 하지만 부친의 순교 이후에 만주신학원을 졸업하고 해방 후에 목사가 되어 평안북도 용천에서 잠시 목회를 한 일이 있다. 그러나 그의 전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산당원에게 피살되어 행방이 묘연해지고 말았다.
우리는 한경희 목사 일가의 뼈아픈 비극에서 한국 민족 근대사의 통절한 대목을 보는 듯하다. 두 사람은 공산당에게, 한 사람은 민족주의자에 희생되는 그 비극이 예사이던가.
양을 찾는 선한 목자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온갖 역경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진실한 목사의 자세는 박해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성도는 모름지기 가정이나 사회에서 맞이하게 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어려움, 나아가서는 가능한 박해의 상황에 대처해 굳은 신앙의 자세를 늘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한경희 목사를 다룬 사료는 매우 미미한 상태여서 교회사학자들의 관심에서 밀려난 상태였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복음을 전했던 한경희 목사의 사역과 삶을 정리한 전기가 출판되었다.
미국 풀러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공부하던 재미 한인 김만수 목사가 고 이학인 목사의 자료를 기초로 해서 2년여 각고의 노력으로 밝힌 한경희 목사의 일대기가 비로소 세간에 드러났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두 차례나 중국 현지를 방문, 답사하고, 관련 인물들을 만나 증언을 듣고, 문헌 자료도 꼼꼼하게 조사해 한경희 목사의 생애를 훌륭하게 역사화했다.
이 책은 최근 해외 선교의 불길이 일고 있는 ‘복음의 한류’ 현상을 바라보며 현재 해외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들과 차세대 젊은 선교사 지망생들에게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한경희 목사에 대한 순교 일화는 당시 신사참배 문제로 일제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아온 한국교회 신앙인들에게 더없이 도전을 준 사건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 김만수 목사의 연구결과이기도 했다. 이 연구를 위해 중국을 2회나 직접 탐사 취재한 김만수 목사는 “해외 선교 불길이 타오르는 최근 한국의 상황을 보면서 한경희 목사의 민족애 신앙 이야기가 도전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선교사 지망생과 일선 목회자들이 탐독하길 권한다”라고 밝혔다.
박용규 교수도 “한경희 목사는 20세기의 사도행전을 주도했던 인물로 기록될 만하다”라고 썼으며, 천안대 기독교학부 장훈태 교수도 “한국의 선교역사에 있어서 귀중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경희 목사의 순교 역사가 한국교회에 밝히 드러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순교당한 곳이 중국 북방이었고, 한경희 목사가 그렇게 한국교회에 알려진 목사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만수 목사가 중국 현지를 두 번이나 가서 조사하고 또 이웃들에게 소식을 들어서 밝혀낸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연구와 추적이 이렇게 큰 성과를 나타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밝혀야 할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한국교회가 여호와 섬기는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왔는데 그 역사에서 나타나는 순교적인 사건들을 계속해서 밝히는 것이 한국교회의 사명이라고 여겨진다. 역사를 추적하고 연구하는 것은 후배들의 큰 몫이라고 여겨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한경희 목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