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필근(蔡弼近, 1885-1973) 목사는 평남 중화군 출신으로 독자로 태어났다. 한학을 했으며 그 후 평양 숭실학교를 1907년(제6회) 졸업하고 평양신학교를 1918년(제11회) 졸업했다. 그리고 1925년 일본 동경제대 문학부를 졸업했다.
그 당시 한국인이 동경제대를 졸업하는 일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채 목사는 수재로 공부할 때 강의시간에 교과서나 부제물을 가지고 들어가는 일이 없으며 시험을 위해 별도로 준비하지 않으며 시험 시간에도 맨손으로 들어가 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그는 모든 과목에 만점을 받을 만큼 우수한 성적이었다. 채 목사는 머리가 비상해 한번 듣거나 책을 보면 모두 기억했으며 동경에 있는 도서관의 책을 거의 다 읽을 정도로 독서량이 많았다.
채 목사가 어느 교회를 담임해 시무하는 중 위임투표를 했는데 한 표가 부표였다. 그래서 그 한 표 때문에 고심하며 어느 신도가 부표를 찍었을까 생각하며 매우 궁금했다.
그러다가 그해 봄 대심방을 하게 되어 첫 가정부터 이 집에서 부표를 했을까 저 집에서 부표일까 하면서 집집마다 의심하며 심방을 했으나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부표 한 표 때문에 문제가 풀리지 않고 그대로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그해 크리스마스 새벽에 대문 밖에 쌀 한 가마니가 놓여 있었는데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 쌀가마니를 어느 신도가 보냈을까 또 궁금하게 되었다.
역시 다음해 봄 대심방을 하면서 첫 가정부터 마지막 가정까지 쌀가마니를 보낸 이가 이 가정일까 저 가정일까 생각을 하면서 대심방을 했다.
결국은 부표 한 표와 쌀 한 가마니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수수께끼로 남겨둔 채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목사는 목회를 하면서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알 수 없는 일이 종종 있게 마련이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