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사람이란 기도로써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다. 기도로서 세상과 정욕과 싸우는 사람이다.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모든 일을 해가는 사람이다. 모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만사(萬事)를 하나님께 여쭈어 보고 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렸다. 아말렉과 르비딤에서 싸울 때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섰다. 아론과 훌은 산으로 올라가서 모세의 손을 붙들었다.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모세의 팔이 피곤해지자 그들은 돌을 가져다가 모세로 하여금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은 모세의 팔을 들어 올렸다. 해가 지도록 그 손이 내려오지 않게 했다. 기도가 뜨거울 때는 그들이 이겼다. 기도의 사람이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기도한다. 하나님께 다가가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간구하는 사람이다.
나의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자식들을 위해서 평생 기도하셨다. 필자가 선친보다 11년을 더 살고 있다. 나의 앉고 일어서고 활동하며 이만큼 사는 것이 모두 부모님의 기도해 주신 하나님의 응답이 아닌가 생각된다.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어느 신실한 성도는 친구의 구원을 위해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기도한 끝에 그 친구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기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이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며 대화를 하는 것이다. 나의 모든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겠는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더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도한다. 나 같이 못나고 부족한 사람이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특권인가!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미워하는 감정은 나를 힘들고 불편하게 했다.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싶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싶었다.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의 잘못을 자연스럽게 잊고 용서하게 되었다.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를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만 국한(局限)시키면 성숙해지기 어렵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궁(窮)해지면 하나님께, 사람에게 매달린다. 인간의 도움으로 궁지(窮地)에서 벗어나 보려고 한다. 그러다가 인간의 도움이 한계에 오면 기도를 하게 된다. 기도가 응답되어 성령이 임하시면 기도자는 강한 사람이 된다. ‘내게 행복이 오게 해주옵소서. 불행이 닥치지 않게 해주옵소서’ 이런 기도는 응답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내게 정결한 마음을 주옵소서. 환난을 견디어 낼 힘을 주옵소서. 내게 원수까지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사랑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된다.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사를 구하는 기도, 용기와 인내와 마음이 청결해지기를 원하는 기도는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응답되지 않는 기도가 있다. 모세에게는 은밀한 소원이 있었다. 40년간 광야에서 한평생을 보내고 마지막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었다. 결코 무리한 소원도, 나쁜 소원도 아니었다. 다만 죽기 전에 자기 발로 요단강을 건너 자기 눈으로 약속의 땅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늙은 종, 모세의 기도를 물리치셨다.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얼마나 겸손하고 사심(私心)없는 기도인가!
“그만 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너는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너는 요단강을 건너지 못할 것임이라.”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