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포라 70년의 굴곡진 세월 ②
금년은 독일 신학자 본회퍼의 서거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독재자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저항하다 투옥당하고 끝내 교수형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겪은 고난의 역사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고뇌한 흔적이 그의 시편에 남았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시에서
나는 누구인가?
그 사람인가?
저 사람인가?
오늘은 이 사람, 내일은 어떤 다른 사람인가?
인간 앞에서는 외식(外飾)하는 자인가?
라고 거듭거듭 자기 검증을 하고 있다.
나는 본회퍼가 신앙 양심에 따라 히틀러에게 충성했던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강하게 반발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짐했던 행위에 주목한다. 그가 초지일관했던 존재의 본질은 무엇이었는지에 주목하게 된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유대인 600여 만 명을 살상했다. 반(反)유대주의로 실시한 홀로코스트로 아우슈비츠 감옥에 수용되었던 한 유대인이 벽에 남긴 낙서(落書)는 그가 믿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문이다.
나는 태양이 비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사랑을 느낄 수 없을 때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다
자신의 임박한 죽음 앞에서 하나님은 왜 계속 침묵하고 계실까, 과연 내가 믿어 온 하나님은 지금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때 화자는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에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는다”는 확신을 수용소 벽에 각인해 놓은 것이다. 죽음 앞에 선 기독교인의 절대적 신앙고백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호소했으나 하나님은 끝내 침묵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가장 괴로운 침묵이 아니었을까.
본회퍼의 경우나 위에 예시한 유대인의 경우나 모두 최후의 순간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생을 마친 사례이다.
<나는 믿기 위하여 알려하지 않고 알기위하여 믿는다. 나는 믿는다~내가 믿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것을>
스콜라 신학자 안셀무스 신앙관이다. 믿음이 전제되지 않은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기 어렵다는 말이다.
아나스포라의 꿈, 한갓 무수옹으로서 여생을 누리고 싶다는 꿈이 사라진 것이다. 이제 영생에의 소망을 향해 새로운 나의 정체성을 점검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