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한 금식 기도
한번은 학부모들이 학교를 방문해서 자녀들이 묵고 있는 홈스테이 가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낸 홈스테이 비용과 홈스테이 가정이 받는 금액이 20불 정도 차이가 난다는 걸 알고 난리를 쳤다. 뉴질랜드 내에 있는 모든 학교는 홈스테이 관리 비용으로 20~30불 정도를 받는데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더구나 그 20불은 현지 학교가 받는 것이라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그들은 선교사가 아이들 돈을 사취한다며 우겼고 삿대질을 그치지 않았다.
나는 참다못해 책상을 한 번 쾅 치면서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한 학부모가 ‘선교사가 사람 친다’며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자기 웃통을 걷어 올리고 목청을 높였다. “나, 이런 사람이야! 나 건드리면 다 죽어! 알았어?” 그 남자의 상체에는 가슴에서 배까지 가로지르는 엄청 큰 칼자국이 선명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소름이 돋으면서 움찔했다.
‘조폭인가? 이 사람 정체가 뭐야?’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다 지나가던 그때, 이 남자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 대장암 수술 받은 사람이야. 나 건드리지 마!”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진실이 통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교육 선교의 꿈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평생 크리스천으로 살아왔지만 변변하게 금식 기도 한 번 하지 않던 내가, 이때 처음으로 금식 기도를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기 위한 특별 훈련이었다. 사람을 의지하고 환경을 바라본 잘못된 믿음을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의지하도록 변화시키신 것이다. 나이 마흔이 다 돼서 주의 일을 하려는 나의 모나고 부족한 점들을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을 생각하고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상처가 너무 커서 학교 일은 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런데 6개월 뒤 한국에 IMF가 터졌다. 한국 유학생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뉴질랜드 내 학교 대부분이 도산했다. 우리도 더 이상 학생을 모집할 수 없어서 학교 문을 닫았다.
“주님, 다시는 학교 일 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제발 일 년만 좀 쉬게 해주십시오.”
학교 문을 닫고 가장 먼저 했던 기도다.
그 후로 나는 매일 골프장에 갔다. 뉴질랜드에서는 골프가 대중 스포츠라 1년 회원권이 15만 원 정도 했다.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어서 자치기하는 수준이었지만 매일 공을 치며 마음을 달랬다. 골프를 친 다음에는 유황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것들이 내 삶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9개월을 보내고 있는데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