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함께 행복한 시간] 에스라 “성전, 말씀 그리고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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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구절 : 에스라 7:1–10  ‘형식’과 ‘내용’ 사이

하나님께서는 70년 포로 생활 속에서도, 끊어졌다고 여겨진 구속사를 미세한 숨결로 이어 가고 계셨습니다. 고레스 왕의 칙령이 선포되자, 사람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페르시아에 남아 안정을 택할 것인가,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가 ‘하나님 나라’를 세울 것인가? 1차 귀환을 이끈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무너진 성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초라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거룩한 설렘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80여 년 후, 궁정 서기관 에스라가 두루마리를 들고 일어섭니다. 성전 터 위에 예배의 형식은 회복되었지만, 그 안을 채울 ‘내용’—곧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구-준행-가르침’이라는 세 단어가 에스라의 가슴을 불살랐고, 왕의 호위와 재정을 뒤로한 채, 두 번째 귀환 행렬의 선두에 섰습니다. 

첫째, 방해가 빚어내는 신앙의 깊이  

성전 재건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사마리아에 먼저 자리 잡은 혼합혈통의 지배층은 경제·정치적 기득권이 흔들릴까 두려워 페르시아 왕에게 고발장을 올렸습니다. 공사는 중단됐고, 종교적 열정을 지키기에는 현실적 피로가 더 빠르게 쌓여 갔습니다. 학개와 스가랴가 그때 등장해 ‘너희가 판에 박힌 일상에 안주하며 하나님의 집은 돌보지 않는다’고 외쳤던 것도 이 무렵입니다. 교회 역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환호가 아니라 반대와 역경일 수 있습니다. 오해, 모함, 재정 압박, 내부 갈등…. 그러나 하나님은 낙담한 이스라엘에게 “이 성전을 내가 영광으로 가득 채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음은 방해의 밤을 통과할 때 비로소 익어 가는 법입니다.

둘째, 예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에스라서는 ‘성전을 성전답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예배를 제시합니다. 예배란 정해진 예식에 참여하는 행위를 넘어, ‘하나님은 창조주, 나는 피조물’이라는 진리를 온 존재로 수긍하는 사건입니다. 내 뜻이 아무리 옳아 보여도 하나님께서 멈추라 하시면 멈추고, 현실이 아무리 막막해도 하나님이 걸어가라 하시면 가는 순종—이 태도가 예배의 알맹이입니다. 화려한 의식과 최신 시스템에도 그 중심이 빠지면 빈 무대 장치에 불과할 뿐입니다.

셋째, 말씀: 연구하고, 살아내고, 나누라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스7:10). 이 한 구절은 목회자의 사명을 정확히 꿰뚫습니다. 깊이 연구해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그대로 준행해 삶으로 본을 보이며, 마침내 가르침으로 공동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삼 단계. 말씀의 감화는 강단에서 교인의 귀까지가 아니라, 목회자의 발바닥에서 성도의 일상까지 흘러갈 때 완성됩니다. 직분과 직책이 ‘특권’이 아니라 ‘순번’임을 기억하는 일, 프로그램보다 예배의 깊이를 먼저 점검하는 일, 성경 통독의 속도보다 말씀 묵상의 밀도를 우선하는 일—이 작은 실천들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우뚝 세우는 돌담이 됩니다. 

마무리,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까지

성경은 그 대열에 선 이들의 숫자를 끝자리까지 기록해 놓았습니다. 통계로는 의미 없어 보이는 그 잔여 숫자들이, 하나님의 눈에는 잃어버릴 수 없는 한 영혼임을 증명하듯 말입니다. 이후 에스라가 역사의 무대 뒤로 물러난 뒤, 예루살렘에는 균열이 찾아옵니다. 성벽이 없어 외세의 위협에 무방비였고, 내부적 신앙 타락도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가 등장해 ‘성벽’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맞추지만, 그것 또한 완결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 재건은 한 세대의 열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매일의 예배, 말씀, 그리고 영혼 사랑이 이어질 때만, 에스라가 품었던 회복의 서사는 지금 이곳에서도 현재진행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한 움직임이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권오규 목사

계산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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