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이 중국 간도에 이주한 것은 구한말 때부터다. 한일 합방 1년 앞둔 1909년이다. 그 당시 간도 지방에 거주하고 있던 청나라 사람들은 2만7천300명이었다. 이때 한국인은 8만 2천900명으로 수가 많았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망명해 고국을 떠났기 때문에 비교적 가난했다. 간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애국자들로 독립운동을 중심해 사회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간도에 이주한 한국인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으로 1902년부터 간도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전도해 많은 신도들을 얻게 되었다.
1906년 용정시에 교회를 설립해 점점 교회가 부흥되어 1917년에는 21개의 한국교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교회마다 학교를 설립해 자녀들에게 기독교 교육을 중심해 교육을 철저하게 시켰다. 그래서 간도에 1920년에 120개 교회가 세워졌으며 신도가 5천 명이었다. 그때 새로 세워진 교회들도 학교를 세워 자녀들에게 교육을 했다. 이렇게 교회와 학교가 확장되었다는 소식이 중국 당국에 알려져 중국정부가 한국교회와 신도들에게 박해를 했으며 신도들의 재산을 강탈해 큰 피해를 입었다.
그 후 일본 영사관이 한국교회의 실정을 알고 한국교회를 핍박했다. 그리고 일(日)·로(露)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 국민에게까지 폭행을 당해 이래저래 고통스러운 불안한 생활을 계속했다. 한국인들은 중국에서 나라가 없으며 주권이 없어 여러 면으로 고통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면서 독립운동을 했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고국을 떠나 중국 간도에서 수모와 설움을 당하면서 믿음을 지키고 나라를 지킨 일은 위대한 일이다.
그 당시 중국 간도 지역에서 한국교회가 믿음의 뿌리를 내린 것이 오늘까지 신앙을 지켜 현재 한국교회를 통해 북한 탈 국민들을 보호하며 인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100년 전에 한국인을 만주에 보내시고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현재까지 믿음을 지켜 탈북민들을 돕게 하셨다.
김광식 목사<인천제삼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