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복음서의 황금률

Google+ LinkedIn Katalk +

나와 내 가족은 지금 이 땅에서 어떤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나?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만나 대화라도 할 수 있는 대상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신문과 TV 즉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을 딛고 함께 사는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그래서 이 대한민국에서 같이 숨쉬고 사는 것이 고마운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 다행스럽게 여기는 반면에 동시대인으로 같은 국가사회의 구성원 됨이 부끄럽고 화나는 사람들이 있음은 불행한 일이다. 좋은 사람들만 바라보고 좋지 않은 인간들에 대해서는 “신경 끄고” 살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누구나 경험하듯이 그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정치인들이 내가 용납하기 어려운 노선을 추구한다고 개인적인 거부감을 논하는 것은 삼가야 하겠지만, 무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밤낮없이 편가르기로 상대 측 인사들을 조롱하며 낄낄대는 정치 어릿광대, 그리고 이런 걸 흉내내면서 사회정서와 언어문화를 타락시키는 부류들을 참고 견디는 것은 고역이다. 

문제는 정치무대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무시못하게 자라나고 굵직한 정치인들이 이들의 쇼에 나오려 줄을 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어떤 판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정신적 피해보상’ 소송을 걸어온 100여 명의 시민들에게 10만 원씩을 물어주라는 판결을 내린 것을 보며, 나는 이런 불량 선동꾼들에게 정신적 피해보상으로 얼마를 청구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런가하면 오늘날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분량의 행복감을 내게 선사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지난 10년 동안 손흥민 선수가 영국 토트넘 팀의 주전 멤버로서 통쾌한 골을 넣을 때마다 한국 팬들의 기쁨은 영국 팬들의 환호에 비할 바가 아니었는데 이제 동포들이 많은 LA로 이적하고 나서의 활약상은 그 몇 갑절 즐거움을 태평양 양편에 선사할 것이다. 

스포츠 외에 문학, 클래식 음악, K-pop이라 불리는 대중음악 영역에서 세계인의 감성을 뒤흔들고 있는 한국인들의 이름은 날로 늘어가고 이들에 대한 찬양과 감사는 말로 다할 수 없다. 

여기서 한가지 바람이 솟아오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종교의 구분을 초월하는 영적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다. 한경직 목사, 김수환 추기경의 이름을 잇는 누가 지금 어디 계신가 하는 물음에 바로 답을 얻지 못하는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본다. 

대단위 목회에 성공하고 있는 훌륭한 설교가가 적지 않으나, 행함과 말씀으로 선한 영향을 널리 사회에 끼치며 한국 종교계의 상징으로서 국민적 추앙을 받는 그러한 이름은 오늘날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가 쉽게 듣지 못한다. 어째선가? 멀리 향하던 눈을 내 주변, 내 교회로 돌리면 신앙인으로서 아무 흠 없고 가정이나 생업이나 교회봉사, 사회활동에서 모범을 보이는 분들은 한마디로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오늘의 세상은 빛나는 큰 별들보다는 개별적 거룩함의 빛으로 맑아지고 밝아지는 시대로 되고 있는가 짐작해 본다.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자신의 생각을 180도 전환하라고 복음서의 황금률이 준엄하게 명한다. 영어성경의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눅 6:31)가 강하게 심장을 때린다. 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데.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