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전라도가 고향이지요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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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미군정기 기독교 학교들의 복교

순천 매산중학교는 순천노회 김상권, 김형모, 라덕환, 최정완, 김원식 등이 모여 1946년 9월 24일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교사를 인수하고 고려위 박사를 초대 교장으로 선임하면서 학교가 복교되었다. 이때 교사로는 유영산, 이양원, 이애신 등이었으며 여학생부는 비가(Miss Meta Biggar, 한국명 : 백마다) 선교사가 맡았다.

다시 1947년 김형모 목사가 제2대 교장으로 취임해 알차고 내실 있는 교육을 실시하면서 가난한 청소년들에게도 배울 기회를 주기 위해 야간부를 설립했다. 다시 문교부의 교육법 변경에 따라 1950년 5월 17일 매산 중·고등학교 분립에 따라 고등학교는 은성고등학교로 개명했다. 그러나 1962년 학교법인 호남기독학원이 발족하면서 은성고등학교를 매산고등학교로 다시 개명했다.

순천 매산여자고등학교

그 동안 매산고등학교에서 남녀 공학으로 운영해 오던 여학생부를 따로 독립해 여자고등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느꼈던 학교법인 호남기독학원 이사회(당시 이사장 유은옥 목사)에서는 순천 매산여자고등학교를 설립하기로 준비해 오던 중 1983년 12월 30일로 인가를 얻어 매산동산에 캠퍼스를 정하고 1984년 3월 1일 매산여자고등학교를 개설했다.

전주 신흥중·고등학교

전주 신흥학교도 서서히 복교 준비에 임했다. 당시 전주 북중학교 교장인 김가전 목사 집에서 신흥학교 동문인 김상진을 비롯해서 오준송, 오장모, 김흥태, 최월봉, 강봉의, 이영석 등이 모여 학교 복교를 다짐하고 준비에 착수했다. 때마침 폐교 당시 교장이었던 인돈 선교사가 1946년 6월 전주에 도착하면서 복교 문제는 진일보하게 되었다. 1946년 11월 26일 미군정 문교부장으로부터 전주 신흥중학교로 인가를 얻고 전주 북중학교 교사에서 입시를 실시했다. 이때 4개 학급 240명을 선발했으며, 미군이 사용하고 있던 캠퍼스를 겨우 양해 얻어 강당에서 입학식을 거행했다.

인돈 선교사의 노력으로 미군의 병사는 운동장에 콘센트를 설치해서 사용하게 하고 교실은 모두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이 일로 신흥학교 캠퍼스는 미군과 신흥학교 학생들이 같이 사용하게 되었으며, 인돈 선교사는 바로 교장으로 취임하면서 전주선교부 재건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 장평화는 협동 교장으로 선임되었지만 실질적인 교장은 장평화가 맡았다. 교사로는 김재권, 유재금, 김용길, 이경상, 김기주 등이었으나 그후로 학생들이 증가하자 배복석, 유흥렬, 김철주, 양영옥, 장승하, 김현택. 김용갑, 성갑식, 유영산, 김인오, 정기룡, 이석규, 이병욱, 조종권, 김원명, 황희영 등이 교사직을 맡았다.

전주 기전여자중·고등학교

전주 기전여자중학교도 해방과 함께 동창들이 중심이 되어 복교 준비를 했다. 이때 동창으로는 강옥전을 비롯해서 박귀동, 김선례, 고자경 등이 모여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준비위원들이 동창을 찾아다니면서 모금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다행히 인돈 선교사의 도움으로 1946년 11월 26일 신입생 50명을 모집해 복교식을 거행했다. 복교 초대 교장으로는 동창회에서 복교에 힘을 기울였던 강옥전을 교장으로 선임했으며, 어려운 가운데 복교를 했던 강옥전은 가사일을 제쳐놓고 학교 운영에 몰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뜻도 몰랐던 학생과 교사들은 강옥전 교장에게 불만이 많았고 이에 화가 난 강옥전은 1949년 3월 30일 교장직을 사임했으며, 그 후임으로 인돈 선교사 부인 인사례 선교사가 교장으로 부임했다.

또한 1949년에는 기전초등학교를 개교하고 역시 인사례 선교사가 겸임했다. 남편 인돈 선교사는 신흥중학교 교장으로, 기전여자중학교 교장은 인사례 선교사가 맡아 학교 발전에 최선을 다했다. 새 학제의 변경에 따라 1955년 기전여자고등학교를 신설하고 중학교에서 올라온 학생들을 받아 여성으로서 갖추어야 할 교양을 폭넓게 가르쳤다.

목포 정명여자중·고등학교

목포 정명여학교가 폐교된 지 얼마 후에 목포시는 적산 가옥을 그냥 놀릴 수 없다면서 목포여자상업학교를 신설하고 정명여학교 교사를 그대로 사용했다. 해방이 되자 강제로 철수했던 김아각 선교사와 폐교 당시 교장이었던 하퍼(Miss Marguret Hopper, 한국명: 조마구례, 이하 조마구례로 표기)가 재입국했다. 이때 조마구례 선교사는 즉시 동창생인 김조홍, 손덕요, 안일심, 박영애 등과 함께 복교 준비를 했으며 당시 미군정 목포시장인 최섭 장로도 이 일에 적극 협조했다. 미군과 목포시 당국과 교섭해서 목포여자상업학교를 역전에 있는 창고를 수리해서 학교 시설로 바꾸어 놓고 학교를 이전시켰다. 

드디어 1947년 9월 23일, 학생 60명을 모집하고 입학식을 거행했는데 교장에는 최섭 장로, 서무과장에 이기동, 교사에 박완덕, 전주안 등이 선임되었다. 이때 보육과도 함께 신설해 유아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962년 12월 31일 고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고 그 다음해인 1963년 3월에 입학식을 가짐으로써 오늘의 정명을 명문으로 만들어 갔다.

안영로 목사

· 90회 증경총회장

· 광주서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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