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성총회로 한국교회의 미래 열어 가길

Google+ LinkedIn Katalk +

110회 총회에 바란다

1907년 9월 17~19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회집된 독노회는 목사, 선교사, 장로총대 78명이었고, 회장은 마포삼열 선교사였습니다. 1912년까지 독노회로 존립하다가 1912년 9월 1~4일 평앙신학교에서 제1회 총회가 출발했습니다. 총대는 목사 96명, 장로 125명이었고, 총회장은 언더우드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110회 총회를 맞게 됐습니다. 교회나 총회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여서 아프고 힘든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겪은 핍박, 6.25 남침, 숱한 정치 격랑과 사회변동,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분열의 아픔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총회는 의연히 자리를 지켰고 십자가 복음을 사수했습니다.

때마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총회는 협동과 예지를 발휘해 위기 국면을 넘어 해법을 찾곤 했습니다. 통합과 합동의 분열 이후 우리는 그 도도하고 당당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실로 자랑스럽고 탄탄한 총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110회 총회도 자랑스럽고 박수받는 총회로 개회되고 폐회되길 소망합니다.

1. 어떤 총회라야 하는가?

성총회라야 합니다.

성회의 시작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주신 하나님의 명령에서 비롯됩니다. 구약은 여러 차례 성회로 모일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유월절, 장막절, 칠칠절, 대속죄일 등 모두 성회로 모여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모이는 것이 성회입니다. 왜 총회가 성회라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논의하고 의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끼리 모여 사람들의 사건을 연구하고 논의하고 결정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습니다. 정치화 해도 안되고 정치집단처럼 행동해도 안됩니다. 그러려면 총대들의 성화가 선행돼야 합니다. 어떤 총대라야 하는가, 어떤 품위를 지켜야 하는가, 언행심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성회를 거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성회였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1:14)

하나님 앞에서 모이는 총회, 하나님이 인준하시는 총회가 성총회입니다.

2.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세속문화와 인공지능(AI)의 발달은 그 속도를 가늠하기 어려워졌습니다. 파고 높은 도전이 우리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생의 주기 끝자락에서 해법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습니다. 도도한 세력으로 다가서는 AI는 양심이 없습니다. 인간이 입력한 정보를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타락한 정보나 하나님 없는 정보가 입력되면 무슨 짓을 할지 예측불허입니다. 조선대학교 박성훈 교수는 “AI는 도구일 뿐 그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우리의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세대와 30~40세대가 교회를 멀리하고 교회의 허리세대가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저출산과 이농현상으로 미자립교회가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총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임원회와 상임부서들은 뭘 해야 될 것인가를 고민하고 길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미교회들의 전철을 따르지 않기 위해선 각고의 비전과 결단이 요청됩니다.

110회 총회가 성총회, 미래지향적 총회, 박수받는 총회가 되길 바랍니다.

박종순 목사

<증경총회장, 충신교회 원로>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