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상생활에서 인공지능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챗GPT에게 물어보면 모르는 게 없다. 번역도 해주고 여행계획도 짜주며 심지어 예약까지 다 해준다. 잘 사용할 줄만 알면 개인비서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이다. 스마트폰이 우리 생활을 바꾸어 놓은 것보다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인공지능의 혁명이 진행 중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2030년이 되기도 전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넘어 초지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함을 넘어서 두렵기까지 하다.
그래서 지금 당장 편리함보다는 우리에게 불어닥칠 위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은행이나 IT 회사들이 직원들을 대량해고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은 사라지고 로봇만이 가득한 공장이 먼 미래가 아니라 코앞에 닥친 현실이다. 의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직은 더 일찍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제 우리 자녀와 후손들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우리 일자리를 모두 없애버린다면 제품을 구매할 소득이 부족해 경제는 공황에 빠질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서, 기계가 주인이 되고 인간이 노예가 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매트릭스와 같은 영화가 현실화되는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른다.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가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위험 때문에 인간이 멸종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영국의 저명한 천문학자인 마틴 리스 경은 자신의 저서와 강연을 통해 100년 이내에 인류가 멸망할 확률이 50%는 넘는다고 주장하면서 기후변화와 환경재앙, 전염병, 소행성충돌, 핵전쟁과 함께 인공지능의 위험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의 위험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인공지능이 마치 신처럼 인간을 노예화한다는 SF영화의 상상은 우리를 막연한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에 직면해서 남긴 명언처럼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오직 두려움 그 자체일 뿐이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그 한계가 있음을 안다면 우리가 그렇게 공포에 사로잡힐 이유가 없다.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수리물리학자 로저 펜로즈는 컴퓨터가 계산 기계일 뿐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질 수 없음을 논증했다. 인공지능이 지능으로 인간을 앞설 수는 있지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자의식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를 포함해서 많은 과학자가 이 말에 동의한다.
인공지능은 생각하고 인식하고 계산하는 데는 탁월하지만 느끼고 슬퍼하는 연민의 감정을 가질 수 없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을 찾을 줄 알지만 어떤 목표를 추구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기계는 지능은 높지만 지혜가 없다. 지혜는 온전히 인간의 몫이다. 지혜는 용기, 덕, 사랑과 같은 도덕성에서 나온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기계가 지능만 높을 뿐 지혜가 없는 합리적 바보라는 사실이다. 그런 기계가 사악한 인간에게 이용될 때 위험이 극대화된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은 인간성의 회복이고 높은 도덕성을 되찾는 것이다. 인간이 첨단 과학과 기술에 의해 휘둘리지 않고, 도구로서의 과학기술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지성을 포용해 영성으로 이끄는 참된 기독교 정신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