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회 총회를 바라며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 아직도 25년 전의 음성이 바람결을 타고 남한산성 곳곳에 울리는 듯하다. 어쩌면,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 나라 이 민족의 심장을 두드리는 것이 맞을 듯하다. 기독교인 유무와 상관없이 한 몸에 존경을 받았던 故 한경직 목사님의 일화에서 비롯된 이 말은 성도라면 직분을 떠나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한 목사님이 은퇴 후 30여 년 가까이 보낸 남한산성의 우거처는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목회자를 외형의 조건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의 이목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에서 감동을 받기도 하고 지탄을 하기도 하니, 참으로 조심스럽다 못해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산비탈에 작게 조성된 이 건물 한평생 존경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을 뿐만 아니라 개척한 영락교회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부흥한 인물과 연결짓기 어렵기만 하다. 하나님의 부르심 이후에 언론으로부터 집중 조명된 사건도 잊을 수가 없다. 휠체어와 지팡이, 겨울 털모자, 입던 옷가지, 생필품이 전부였다는 내용만으로도 청빈의 삶을 실천한 목회자로 칭송한다.
이 같은 한 목사님이 은퇴 후에도 우거처를 찾는 목회자들에게 했다는 이 말 “목사님들, 예수 잘 믿으세요”는 한 방울의 진액까지도 끌어 올려 세상을 향해 쏟아낸 외침이라 할 수 있다.
제 아무리 후배 목회자라 하더라도, 면전에서 “목사님, 예수 잘 믿으세요”라고 말할 배짱 좋은 목회자가 얼마나 있을까?
소이부답(笑而不答)이라는 말이 있다. 난처한 질문을 받거나 대답하기 곤란한 상황일 때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서로의 관계가 깨지거나 예전만 못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굳이 나선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비단 이뿐이랴. 관계의 단절까지도 각오하면서 대화를 이어간다는 것은 상대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서론이 길었다. 우리 교단의 자랑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한 목사님 일화까지 꺼내 지루하게 글을 채워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소이부답(笑而不答). 난처한 상황을 마주하고 이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라는 변명과 함께 비겁한 이유를 들어본다.
최근, 한국장로신문사로부터 110회 총회에 바란다는 원고를 청탁받고 마음이 불편했다.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말이 해년마다 반복되고 있음에도 이렇다할 변화나 개혁은 없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적 진보‧보수 갈등이 교회내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교회는 사회적 지탄을 받다 못해 혐오의 대상이 된지 오래고, 복음의 길은 막혀 전도가 되지 않는다는 등의 위기감은 그야말로 구태의 주장으로 추락한지 오래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유독 폭설과 폭우 등으로 인한 재난재해도 많았다. 한쪽에서는 괴물로 표현되는 비가 내려 소중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다른쪽에서는 한 방울의 비도 없어 마실 물이 없다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이나 위기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남 탓을 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낱낱이 회개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정신이자, 성서의 가르침이다. 지금이 바로 자성의 때, 예수님을 바로 믿지 못한 것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할 때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은퇴 목사가 용기가 없고, 그렇다고 소이부답(笑而不答)으로 포장해 넘길 수도 없어 한 목사님의 일화를 소환해 스스로를 방어하는 소심함을 부디 용서해주기를 바란다. 이번 총회가 예수님을 잘 믿는 총회로 돌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개혁교회 정신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일지니, 예수님을 잘 믿어야 용서도 할 수 있고 사랑도 할 수 있는 법이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총회 주제 성구와 같은 역사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를 통해 110회기 총회가 거룩한 총회로 세워지고, 이 나라 이 민족을 살리는 총회가 되기를 바라며, “총대 여러분, 예수님 잘 믿으십시오”라는 말로 시론을 대신한다.
채영남 목사
<증경총회장, 본향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