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남매 중에 셋째입니다. 그중에 제가 용돈을 잘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요구에 거절하신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형제들도 무슨 필요가 있으면 제가 대신 어머니께 말해 받아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 말과 자세가 어머니의 마음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허락된다는 것을 압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신앙생활의 중심도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그 말년에 다음 왕위에 오를 솔로몬에게 이렇게 유언합니다(대상 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즉, 하나님을 알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제각기 제 마음에 좋은 대로 우상화하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미신이 됩니다. 성서의 신앙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서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기도는 그의 뜻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고 도우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과 뜻과 법칙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크게 공의와 자비라는 두 기둥입니다. 아무리 금식하며 열심히 기도해도 하나님의 정의는 굽거나 휘지 않습니다. 누가 하나님 앞에 정의로 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비유에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 서서 따로 기도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행한 율법의 의로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습니다. 예수의 복음은 세리가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 집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둘을 만족시키십니다. 정의로는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이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세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붙잡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소망을 두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히 4:16). 둘째로 하나님의 뜻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때, 상황, 환경 속에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믿음은 그 문을 보는 지혜요, 그 길을 걷는 용기입니다. 누구든지 그 문에 들어서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셋째로 창조주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과 말씀을 따르는 자가 형통합니다. 성경의 신앙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질서와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에서 은혜와 복을 누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 길에 평강이 있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섬길 때 하나님 앞에 서는 진정 예배가 되고, 교회가 교회 되며, 기도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리고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규동 목사
<동해제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