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길] 빌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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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속에서 절망을 경험한 자리

빌립보는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광산 채굴과 주변 관리를 위해 세운 도시였습니다. 도시 이름은 당연히 자신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훗날 이 도시는 로마의 내전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공화파와 카이사르파는 크게 충돌했는데 그들의 승부가 판가름난 곳이 바로 이 빌립보였습니다.

이후 안토니우스와의 내전에서 최종 승리한 카이사르의 양자 아우구스투스는 불필요한 군단 군인들을 퇴역시키고 여러 식민 도시들에 정착하도록 했는데 빌립보는 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퇴역 군인들은 넉넉한 퇴직금을 그들의 도시에 투자했습니다. 그래서 도시는 경제적으로 번성했습니다. 

빌립보는 흡사 ‘작은 로마’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도시는 로마처럼 이원 집정관체제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도시의 시민은 로마 본토 시민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빌립보의 시민들은 로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인으로 명예롭게 사는 일을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드로아에서 바다를 건너 빌립보에 온 바울은 거기서 유대인의 회당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안식일이 되자 그들은 성 밖 간기테스 강가에 유대인들이나 신실한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루디아를 만난 것은 바로 거기서였습니다. 은혜로운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점치는 여종을 귀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한 일이었습니다. 돈벌이를 할 수 없게 된 주인은 바울과 실라를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도시 통치자들은 합당한 절차 없이 그들을 구타하고 감옥도 아닌 곳에 가두었습니다. 자부심 강한 로마시민이 할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다음날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이 밝혀져 풀려나게 되자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불법적인 행동들이 알려질까 싶어 바울과 실라 및 일행에게 조용히 성을 떠날 것을 권합니다. 말하자면 협박을 한 것입니다. 

바울과 일행으로서는 희망과 기대로 밟은 땅에서 예상치 못한 고난을 경험했습니다. 새로운 지경은 고난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길 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강신덕 목사

<토비아선교회, 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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