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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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은 내내 구름 끼고 비 오는 날씨에 보름달은 볼 수 없었지만, 긴 연휴 기간에 온 가족이 일상의 번잡한 걱정에서 벗어나 따뜻한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에는 환한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는 듯하다. 

명절에 누리는 마음의 풍요를 위해서는 억만금의 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함께 사랑과 감사가 있는 식탁에 소박한 한 끼의 식사로도 충분하다. 우리 삶에서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환한 미소와 한마디의 따뜻한 격려, 마음에서 우러나 정성으로 준비한 작은 선물 한 꾸러미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런데 물질적인 풍요가 넘쳐나고 명절 연휴 때마다 전 세계 곳곳으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된 요즘 오히려 우리 마음은 그렇게 풍요롭지 않다. 돈은 넘쳐나는데 정작 기쁨과 행복은 더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주위에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이 온통 돈과 명예와 세상의 욕심에 팔려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보지 못한다.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선물을 주고 받았다. 명절 때마다 정기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갚아야 하는 부채로 느끼기도 한다. 값비싼 선물일수록 감사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부담감만 커진다. 또 요즘에는 백화점에서 배달하는 선물은 원하면 상품권으로 교환도 가능하므로 현금으로 받는 것과 별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선물이란 마음을 담아서 정성으로 마련해야 하지만 받는 사람의 편리함을 생각해서 오히려 현금으로 하는 선물이 더 선호되기도 한다. 

선물조차도 그저 돈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되어 버렸으니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명절을 제대로 즐기려면 멋지고 화려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 대세인 요즘, 돈은 더욱 중요해진다. 돈이 없으면 ‘방콕’으로 긴 연휴를 지루하게 보내야 한다는 자조 섞인 농담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그의 또 다른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모든 것을 돈으로 거래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공동체를 파괴하고 우정과 사랑과 같은 덕목을 사라지게 하고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게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거래되는 자본주의 세상에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우리 마음의 눈이 닫혀있기 때문에 보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아기 우유가 떨어진 한밤중, 동네 편의점에서 3천 원에 살 수 있는 우유 한 병의 가치는 분명히 그 이상이다. 인적이 끊어진 거리에서 택시는 우리를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준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돈으로 지불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주고 받으며 살고 있다. 우리는 각자가 하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또한 상대로부터 받는 호의로 인해서 혼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장거래가 단지 상대방을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칼뱅과 루터와 같은 위대한 개신교 신학자들의 가르침이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도 소명으로서의 직업의식과 청지기 정신으로 살아갈 때, 우리 신앙인은 마음의 눈으로 일상에서 사랑과 우정, 희생과 배려와 같은 높은 도덕적 가치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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