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우리 말 우리 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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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영어 공부에 돈과 시간과 열정을 쏟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말을 바로 알고 적당하게 사용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말 중 고조선 시대(B.C 2333년-B.C 908년)부터 쓰여진 말들의 어원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①고수레-옛날 단군 시대에 고시(高氏)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당시 사람들에게 불을 얻는 법과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 음식을 해먹을 때마다 그를 생각하고 ‘고시네’를 부르며 그에게 음식을 바쳤다고 한다. 그것이 ‘고시레’, ‘고수레’로 쓰이다가 ‘고수레’로 굳어졌다고 한다. ②금실(琴瑟)이 좋다-금(琴)은 거문고다. 거문고는 원래 중국의 7줄 악기를 고구려의 왕산악이 6줄로 변형해 만든 악기다. 슬(瑟)도 거문고인데 왕산악의 거문고보다 크다. 15, 19, 25, 27줄로 된 것들이 있다. 금슬은 거문고와 큰 거문고(혹은 비파)와의 조화를 이룬다는 뜻이다. 이 말은 시경(詩經/B.C1000-600년대 시가집)의 소아(小雅)편에 나온다. 바꾼 두 악기의 조화로운 음률처럼 부부관계를 금슬상화(琴瑟相和) 혹은 금슬지락(琴瑟之樂)이라고 불렀다. 거문고와 비파를 가리킬 때는 ‘금슬’로 쓰고 부부간의 사랑을 말할 땐 ‘금실’로 읽는다. ③빈축(嚬蹙)을 사다-못마땅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빈(嚬)이고 목을 움츠리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축(蹙)이라 한다. 춘추시대 월(越)나라에 서시(西施)라는 미인이 있었다. 그녀는 가끔 위장병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그 증세가 나타나면 손으로 심장 근처를 누르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그가 아픔을 참느라고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까지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러자 인근 마을에 사는 동시(東施)라는 못생긴 여자가 어느 날 서시의 눈살 찌푸린 모습을 보고 자기도 눈살을 찌푸린 채 서시의 고통하는 모습을 흉내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서 모두들 숨었다고 한다. 그래서 빈축을 산다는 말이 생겨났다. ④사대부(士大夫)-숭록대부(崇祿大夫)나 정헌대부(正憲大夫) 등 대부라는 작호가 붙는 종4품 이상의 관리를 가리킨다. 주나라 시대 지배 계층은 왕(王), 경(卿), 대부(大夫), 사(士)로 나뉘어 있었는데 진한(秦漢)시대 이후에는 단순한 문관(文官)의 관위(官位)로 정착되어 사대부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문관 관료를 총칭하는 말로 쓰였다. 조선 시대는 문관 관료로 4품 이상은 대부(大夫), 5품 이하는 사(士)라고 했다. 때로는 문관과 무관 모두를 합해서 쓰기도 했다. ⑤사직(社稷)과 종묘(宗廟)-종묘는 왕실의 사당으로 역대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사직은 나라에서 백성의 복을 빌기 위해 토지신 사(社)와 곡식신 직(稷)을 모신 단이다. 이때 제례의식은 <주례/周禮>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었다. 주나라 이후 천자(天子)는 7묘(廟)로서 3소(昭), 3목(穆)과 태조(太祖)의 묘를 합해 일곱이다. 제후(諸侯)는 오묘(廟)로서 2소(昭), 2목(穆)과 태조의 묘를 합해 다섯이다. 대부(大夫)는 3묘(廟)로 1소, 1목과 태조의 묘를 합해 셋이다. 사(士)는 1묘(廟)이며 서인(庶人)은 침(寢)에서 제사한다고 되어 있다. 해마다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국가의 대사였기 때문에 ‘종묘사직’은 국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조선은 좌묘우사(左廟右社)의 법도에 따라 주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었다. 지방에서도 수령들이 사직단을 설치해 제사를 올렸다. 종묘에는 춘하추동과 섣달에 대제를 지냈고 사직에는 2월과 8월에 지냈다. ⑥수저-숟가락과 젓가락으로 한 벌을 이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숟가락은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나진초도패총에서 출토된 골제품(骨製品)이다. 약 3천8년 전이다. 젓가락은 우리나라에서는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되었고 중국에서도 전국시대(B.C403-221)에 기록이 나오므로 숟가락에 비해 늦게 발달한 식사 도구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저를 병용한 것은 삼국시대였으며 중국과 일본에서도 함께 써왔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숟가락보다 젓가락이 주로 쓰였고 우리나라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병용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국물과 국물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젓가락을 쓰는 사람들은 손동작이 세밀해 나노 기계를 다루는 데 익숙하다는 설명도 있다.

김형태 박사

<더드림교회•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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