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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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5시 30분이면 나서야 했다. 이곳에서 아침식사 시간은 8시인데 단체생활에서 언제나 먼저 먹을 수 있는 특혜를 받을 수는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학교가 가까운 이태원 쪽에서 방을 찾았다. 마침 어떤 가난한 시각장애인 형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안마하며 생활하는 곳이 있었다. 그 댁에 있기로 하고 짐을 옮겼다. 새로 이사한 방은 비가 새고 벼룩과 빈대가 들끓는 곳이었다. 세 발자국만 앞으로 나가면 시궁창 냄새가 나는 개천이 있었다.

게다가 물도 귀해 세탁도 세수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자니 몸에는 이가 들끓고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끼니 굶기를 밥 먹듯 했다. 그렇게 고생하던 중에 나를 도와준 한 친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박정일이다.

그는 감리교 장로님의 큰아들이었는데 가정은 그리 넉넉지 않았다. 먼 거리인데도 매일 조금씩 일찍 와서 학교까지 나를 안내해 주고 그가 싸온 도시락을 주었다. 또 항상 옆에 앉아서 칠판의 글씨도 읽어 주고 영어 단어도 찾아 주고 어딜 가나 바쁜 중에도 내 눈 역할을 해주었다.

그는 가정교사를 하면서 학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가정교사를 하러 가는 그를 따라갔다. 그 친구의 덕으로 가정교사 집에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잠도 같이 자고 고락을 함께 나누었다. 우리는 어느 친형제보다도 우정이 깊었다.

또한 방학 때는 그의 부모님께서 사시는 연천에 가서 몇 주간을 놀다 오기도 했다. 그의 어머님이 주신 맛있는 식사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와 옥수수, 밀수제비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친구야, 고맙다. 나를 도와주느라 국가 고시에서 떨어져 재수한 것도 잊지 않고 있다.”

박정일이란 친구는 예수님께서 명하신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고 한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다. 그 친구의 목회 생활에 보람과 성공이 있기를 기원한다.

동경교회에서 만난 정성례 할머니

눈 오는 새벽에 찾아오신 여성도 할머니가 생각난다. 몇 년 전 나는 일본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경교회에 가서 1일 부흥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날씨는 매우 춥고 눈이 발목까지 차도록 내렸다. 유달리 일본 추위는 한국 추위보다 더 매섭고 차가웠다. 주일 설교를 마치고 동경 교회 당회장이신 김군식 목사님께서 내준 안방에서 한 밤을 지내고 새벽 5시 30분에 공항으로 떠나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교회 앞에는 언제 찾아오셨는지 정성례 할머니가 기다리고 서 계셨다. 깜짝 놀라서 춥고 눈 오는 새벽에 멀리서 오시다니 무슨 일이 있느냐고 여쭤보았다. 지난 주일 나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해 떠나기 전에 따뜻한 손을 잡고 기도받고 싶다고 했다. 또 적지만 한 사람 분의 개안 수술 헌금도 하고 싶어서 새벽 4시에 첫 전차를 타고 오셔서 30분을 기다리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에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그 할머니는 어린 시절 일본에 가셔서 갖은 고생을 다 겪으시며 칠십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그렇게 넉넉하게 가진 분도 아니었다. 쓰러져 가는 집의 방 두세 칸을 세 놓아 근근이 살아가는 분이었다. 하지만 교회도 잘 섬기고 심방을 가면 대접도 잘하시는 분이었다.

한 사람의 시각장애인에게 빛을 주기 위해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전차를 타고 오셔서 추위와 눈보라를 맞으며 기다려 주신 할머니, 지금도 내가 동경교회에 갈 때마다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시고 일년 내내 돈을 조금씩 모았다가 나의 손에 쥐어 주시곤 한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의 이웃들에게 사랑의 빛을 찾아 줄 수가 있다. 이 땅 위에는 그 할머니보다 더 넉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로서 갚을 수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야 할 사명이 있다. 눈보라를 맞으면서 기다리시던 천사와 같은 그 할머니에게 다시 한번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고마움을 전한다.

일년 반 동안 내 눈 역할을 해준 제자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교회 주일학교 교사를 했다. 또한 신학교 시절에는 교육 전도사로, 또 강도사로 유초등부와 중고등부, 청년부를 담당했다. 그러기에 지금도 어디를 가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반겨 주고 도와주고 찾아오곤 한다. 이렇게 많은 제자들 중에서 잊지 못할 제자가 있다.

수유리 모 교회의 교육강도사로 있을 때였다. 내가 부임할 당시 유초등부가 40~50명 남짓했고, 중고등부는 20~30명에 불과했다. 담임목사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유초등부와 중고등부를 부흥시키라고 당부하셨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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