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건, 미·북 비공식 외교의 숨은 가교
납북의 비극 넘어 한반도 평화 잇다
남궁건 전 부소장은 한국전쟁 당시 대전에서 북한군에 사로잡혔던 윌리엄 딘 전 24보병 사단장에게도 할아버지의 행방을 물었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남궁건 전 부소장은 북미 막후 접촉을 산파역으로 나서면서 교분이 있던 북한 엘리트들에게 할아버지 문제를 넌지시 언급했던 모양이다. 이에 북한도 1990년대 들어 남궁혁의 행적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할아버지의 납북은 집안의 비극이었다. 그런 비극을 유발한 북한에 대한 가족들의 감정은 “복잡한 마음이었으나 북한에 악의를 가지거나 혐오 또는 증오를 품진 않았다. 그 시절 우리 가족뿐 아니라 많은 한국 국민이 비슷한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개인의 가족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의 미래이다.”
남궁건 전 소장은 1990년부터 아시아 사회 대표단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지난 20년 가까이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양자 간에 대화의 다리를 놓아온 숨은 공신의 역할을 했다.
남궁건은 미 특사 리처드슨 방북 때도 역할을 했고, 최근 미 시민권자 한인 케네스 배 씨를 포함해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3명이 전격 풀려난 것과 관련해 그 막후 협상 역할을 미주 한인이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그는 미·북 간 첫 고위급회담을 주선했고, 이후 여러 차례 북한과 미국을 연결하는 비공식적 고리 역할을 해왔다. 몇 년 전부터는 미국 내 대표적 북한통으로 알려진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의 아시아 문제 상임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남궁건은 한국 기자들에게 “북한은 저를 믿을 만한 중재자로 봅니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일한다고 신뢰하죠”라고 자신의 역할을 소개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남궁억의 손자이며, 한국인 최초로 신약학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평양신학교 교수를 지낸 남궁혁의 손자인 남궁건은 자신의 조부가 일제의 박해를 피해 이주한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중국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자 그의 가족은 1950년 홍콩으로 옮겼고, 그 후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일본에 머물면서 외국인학교에 다닌 그는 미국 대학으로 진학했고, UC 버클리 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반도 전문가 로버트 스칼라피노와 함께 동아시아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인디팬던트>지는 남궁건 씨가 어떠한 공직도 맡지 않았지만 지난 십수 년간 미국과 한국 및 일본의 고위급들에게 북한과 관련한 컨설팅을 제공해 왔다며, 그가 이번에도 최근 북한을 방문해 배 씨와 제프리 파울, 매튜 토드 밀러 등 3명의 미국인이 석방될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로비를 했다고 전했다.
<인디팬던트> 지는 남궁 씨가 북한과 관련한 주요 협상에 참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며, 지난해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북한 방문 때와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의 고문으로 활동해 왔으며, 지난 1993년 북한 핵 사태 때에도 북한의 핵확산 방지협정 탈퇴문제 해결에 비공식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UC 버클리를 졸업한 남궁건 씨는 글로벌 마케팅회사 ‘남궁 프로모션’ 조지 남궁 회장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순교자의 후손들이 자기를 소개할 때 순교자의 후손이라는 것을 말하며 그 후손으로서 활동한 역사는 곧 한국 기독교의 역사였다. 순교자 후손들이 신앙의 역사를 이어가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남궁혁 목사의 후손들을 통해서도 밝히 드러나고 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