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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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학교를 부흥시키는 길은 기도와 말씀과 심방이 필수 요소였는데, 그 당시 나는 심방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넉넉지 못한 사례를 받는 데다 아내의 임신 등으로 걱정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 교육을 맡은 교역자에게 교통비나 접대비를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게 길을 열어 주셨다. 전라북도 황등이라는 곳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따라 서울로 올라온 학생이 있었는데, 마침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재수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년 간 아침저녁으로 공부하고 낮에는 나를 좀 도와 달라고 했다. 심방도 같이 가고 책도 읽어 주고 나의 눈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그는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우리 집에서 교회까지는 버스로 세 정거장, 시간상으로는 30~40분이 소요되었다. 그 학생은 언제나 정확히 시간을 맞춰 교회 가는 길 안내와 심방하는 일을 꾸준히 도와주었다. 나는 그를 나의 모교인 숭실고등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추천했고 합격했다.

나는 그와 깊은 정이 들었기에 그 교회를 사임한 뒤로도 자주 만났고, 늘 그를 위해 기도했다. 그는 노래를 아주 잘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음악을 전공하라고 권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려운 경쟁을 뚫고 서울대 음대에 들어갔다. 현재 모교에서 음악 교사로, 합창 지휘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의 세 동생들을 내가 가르쳤고, 그의 부모님들은 나를 참 좋아하셨다.

옛말에 장애인을 천대하면 벌을 받고 장애인을 사랑하면 축복을 받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일년 반 동안 한결같이 시각장애가 있는 나를 위해 희생한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었다. 하나님을 위해, 약한 자를 위해 봉사하면 반드시 하늘의 보상이 따른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나의 제자를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내가 홀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

나는 홀로 외국 여행을 누구보다도 많이 한 편이다. 관광이나 즐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 시각장애인의 선교와 복지와 개안수술을 더욱 활발하게 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홀로 선교 여행을 다니니까 많은 분들에게서 왜 아내와 함께 다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도 아내와 같이 가면 아주 편하게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빨래하는 어려움도 없을 것이고 식사 때 여러 사람에게 부담 주는 일을 덜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5년 간 외국을 다니며 호텔비, 왕복 여비, 식비를 줄여서 모은 돈으로 시각장애인교회도 세우고 실로암 안과병원도 설립하고 복지센터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텔에 가지 않고 친구 집의 거실이나 지하실에서 혹은 온 식구가 같은 방에서 지내면서 몇 주간을 머물렀다.

특별히 나는 주위에 훌륭하고 덕이 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때문에 나는 가서 짐을 푸는 곳이 곧 나의 즐거운 집이요, 가는 곳마다 먹고 자고 쉴 수 있었다. 게다가 하나님 말씀도 전하고 선교비까지 받고 때로는 관광도 하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나는 여행하면서 체험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1985년 여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말씀을 전하던 중에 마이애미와 가까운 잭슨 빌이라는 곳에 갔다. 그곳에는 동기 동창 황태준 목사가 목회를 하고 있다.

미합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플로리다 주의 여름철은 매우 무더웠다. 그곳에서 며칠 간 특별 부흥회를 가졌다.

그리고 한 주간을 더 머물러 있었을 때 한경직 목사님께서 마이애미에 오신다는 연락을 그의 손녀로부터 받았다. 잭슨 빌에서 마이애미까지는 자동차로 열 시간 이상 가야 한다. 나는 친구 목사에게 일생에 한 번밖에 없는 기회인데 자동차로 마이애미에 가서 한 목사님을 잘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제안했다.

친구와 나는 수요일 예배를 끝마치고 밤 10시에 잭슨 빌을 출발해 마이애미로 향했다. 양쪽으로 바다를 끼고 가파른 언덕길과 내리막길을 친구 목사 내외가 번갈아 가면서 운전해서 밤을 꼬박 세우며 달린 끝에 드디어 마이애미에 도착했다. 한경직 목사님을 만나 뵙는다는 기대와 기쁨으로 장장 열두 시간 동안 잠 한숨 안 자고 그곳을 향했던 것이다.

12시에 한 목사님과 그의 따님과 손녀 내외를 만났을 때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마이애미 한복판 식당에서 한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철판구이 식사를 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눴다. 그리고 마이애미의 유명한 관광지에 한 목사님을 보내 드리고, 김세회 목사님 댁에서 며칠 머물렀다. 그때 어느 형제로부터 개구리 다리 요리와 조개의 귀로 만든 요리도 대접받았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친구의 사랑, 그 정성을 무엇으로 보답할까. 나는 근래에 친구의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하다고 느끼곤 한다. 반평생을 하나님의 도우심과 친구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존재해 왔다고 확신한다. 오늘 이 시대에 그와 같은 참사랑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과 무서움도 없으리라 믿는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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