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회, 나의 일생] 교회의 AI 사용과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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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시대가 이미 교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설교문 작성, 성경 연구, 목회 행정, 심지어 예배 안내까지 인공지능이 돕는 시대이다. 교회는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正義)’의 문제이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세 가지의 관점을 제시한다. 첫째는 공리주의적 정의이다. 가장 많은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을 준다면 그것이 정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효율과 결과를 중시하는 만큼 소수를 희생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둘째는 자유주의적 정의이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최우선 가치로 본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공동선보다 앞설 때, 사회적 약자는 더 큰 불평등 속에 방치된다. 셋째는 도덕적·공동체적 정의이다. 인간의 존엄, 선한 삶의 목적, 그리고 도덕적 책임을 함께 논하는 입장이다. 교회의 정의는 바로 여기에 서야 한다.

AI는 공리주의의 유혹을 품고 있다. 효율과 속도, 편의와 생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자리를 밀어내기 쉽다. 그러나 교회는 ‘효율보다 존엄’을 붙들어야 한다. 설교를 빠르게 쓰는 AI보다, 눈물로 말씀을 붙드는 인간 목회자가 더 정의롭다. 교회는 언제나 결과보다 과정, 숫자보다 영혼을 중시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AI는 자유주의의 환상을 일으킨다. 누구나 접근하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과 데이터의 집중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큰 교회는 AI를 통해 행정을 효율화하고 콘텐츠를 확장하지만, 작은 교회는 여전히 따라갈 수 없는 현실에 놓인다. 정의로운 AI 사용이란 기술의 자유가 아니라 접근의 평등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회는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약한 교회와 이웃을 먼저 돌아볼 때 정의의 길 위에 선다.

교회의 정의는 도덕적 책임 위에 세워진다. AI는 인간의 결정을 모방하지만, 인간의 양심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기술의 정확성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가이다. 교회가 AI를 사용하는 이유는 경쟁이 아니라 섬김이어야 한다. 고령 성도에게는 음성으로 말씀을 들려주고, 시각장애인에게는 영상이 아닌 음성 신앙 콘텐츠를 제공하며, 소외된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AI는 정의로운 도구가 될 수 있다.

AI 사용의 정의는 결국 ‘사람을 중심에 둘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기술보다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기술은 인간의 손에 들린 도구일 뿐 인간을 대신할 주체가 아니다. 그러므로 AI를 두려워하지 않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기술을 인간의 지혜로 통제하고 신앙의 영성으로 조율할 때 AI는 위험이 아닌 가능성이 된다.

AI의 시대에 교회가 말하는 정의는 단순한 윤리 강령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대한 신앙 고백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교회는 인간의 존엄을 지켜야 한다. 기술을 통해 약자를 섬기고, 도덕적 위험을 막아내며, 신학적 분별력을 회복할 때 교회의 AI 사용은 정의로워진다.

AI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 사용이 사람을 해치거나 신앙의 본질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교회는 기술의 주인이 아니라 정의의 증인으로 서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기술, 바른 인간, 바른 교회를 세워갈 때, AI는 위협이 아닌 은총의 통로가 될 것이다.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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