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교역자 생활을 20여 년 동안 시무했다. 우리 노회에서 부교역자 생활을 제일 많이 한 교역자 중의 한 명일 것이다. 교인들은 교회법을 모르기 때문에 부목사가 담임목사께서 은퇴하시면 당연히 담임목사로 승계하는 줄 알고 있었다. 현행법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목회자로서의 안정된 길과 새로운 개척의 길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기도의 응답으로 열왕기상 19:18절의 말씀을 내게 주셨다.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가 있는데 무얼 걱정하느냐”는 엘리야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용기를 얻어 개척해 지금 19년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 교회에 C 집사님이 계신다. 그는 몸이 조금 불편하다. 발음이 좋지 아니하고 다리 관절이 좋지 않아 수술하고 불편하게 걷는 2급 장애인이다. 그런데 그를 교회 봉사부장으로 임명해 섬기도록 했다. 그는 매 주일 일찍 교회에 오면 교회 뜰을 청소하고 화단에 풀을 뽑고 눈이 오면 눈도 치우는 성실한 집사님이다. 다만 몸이 불편할 뿐이다.
C 집사님이 주일예배에 오자마자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호주머니 속에서 흰 봉투 한 장을 꺼내면서 나를 보자마자 “목사님, 이거!” 하면서 내게 내어 주는 것이 아닌가. 그게 뭐요? 하자 “교회 봉고 자동차 유리 교체하셔요”, “어디서 그 많은 돈이 났디야?” 했더니 정부가 주는 민생 생활자금이었다. 그런데 그 돈을 자동차 수리비로 내놓은 것이다. “아니, 이 돈으로 쌀도 사고 생필품도 사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걸 주면 어떻게 해”하자 “쌀 있어, 정부미 있어, 반찬도 있고 그러니 우리 교회 차 유리 수리가 더 우선이야” 하며 내밀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5만 원권 지폐 6장이 들어 있었다. 자기가 사용해도 부족할 터인데….
사람을 동물과 비유해 분류하면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개 형과 고양이 형으로 나눌 수 있다. 개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잘 따른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 때문이다. 개는 주인이 아홉 번 잘못 하다가도 자신에게 잘해준 것이 한 번 있으면 그 한 번의 잘해준 것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런 기억이 개로 하여금 사람을 잘 따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렇지 않다. 아홉 번 사람이 잘 해주다가 한 번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 한 번을 기억하고 그 기억이 사람을 잘 따르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실상은 고양이에게 개보다 더 많이 잘해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잘 따르지 않는다. 한 번의 사랑을 받고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의 큰 사랑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C 집사님은 모자를 특히 좋아한다. 계절 따라 모자를 바꿔 쓰고 온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자가 있어서 두 개를 주고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니 바꿔 쓰고 다니라고 했다. 좋아하며 가져갔다. 그 다음 주부터 아주 멋있게 모자를 착용하고 왔다. 내가 봐도 어울리는 모자였다. 내 마음도 흐뭇했다. 또 한번은 “목사님 시계 고장 났어! 시계 고치려면 돈 많이 들어서 그냥 차고 다니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나도 시계가 없으면 불편한데 C 집사님은 얼마나 맘이 아플까 해서 내가 수집해 온 손목시계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목사가 시계를 선물한 사람 있어?” 하니 옆에 듣고 있던 J 권사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목사님은 C 집사님만 좋아하셔!” 아니 J 권사님도 좋아하지이~ 속히 수습한다. 씩 웃는 권사님을 뒤로 하고 목양실로 올라갔다. 대개는 사람들이 사랑을 기억하기보다는 상처를 기억한다. 그런데 C 집사는 자기가 받은 감사를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교회를 개척하고 매 주일 감사의 일천번제를 드리기로 서약했고 올해를 마감하면 일천번제를 훨씬 넘어 달성하게 되지만 목회 끝나는 날까지 계속할 예정이다. 감사를 통해 우리 교회는 빚이 하나도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도 체험하고 있다. 나의 목양의 원동력은 감사이다. 감사를 하면 꿈 같은 일들이 꿈 같이 달성되는 기적을 보게 된다.
명대준 목사
<광주대광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