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길] 고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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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고 떨리는 자리

신화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도시 고린도는 주전 7세기 헬라 세계에서 강력한 나라로 발전하게 됩니다. 주로 해상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취했습니다. 고대 고린도에는 특히 아프로디테 여신의 신전이 크게 성행했는데 그 신전 창기들만 해도 수천 명에 이르렀습니다. 당연히 고대 고린도는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그래서 헬라 사람들은 ‘코린티아제스타이’라는 말을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에 대한 표현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로마에 의해 한때 파괴되었다 카이사르에 의해 재건된 고린도는 무역 도시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덕분에 고린도의 아크로폴리스 경사면에는 거래를 위한 상관이 발달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여기서 나누는 만찬 음식들은 주로 도심 신전에서 나온 제사 제물이었습니다. 이 시대 고린도 사람들은 대체로 해방된 노예 출신 상인과 기술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도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열등감이 있었고 항상 누군가를 경시하거나 의심하곤 했습니다.

한편 바울은 상심한 채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왔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추방령 때문에 로마를 떠나와 있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 그들과 천막을 만드는 일에 전념했습니다.(행 18:2-3) 그 사이 디모데와 실라도 바울과 합류했습니다. 바울의 좌절한 마음은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곧 회당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8:4~5) 그러나 유대인들은 여전히 바울을 괴롭혔습니다.(행 18:6) 결국 바울은 회당 대신 디도 유스도의 집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8:7-11) 그러나 유대인들과 도시 사람들은 바울을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아가야의 총독 갈리오에게 고소했습니다. 바울은 다시 고린도를 떠나야 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를 원했지만”, “약하며 두려워하여 심히 떨기도” 했습니다.(고전 2:3) 동족의 괴롭힘과 문화적 교만함이 가득한 헬라 본토는 참으로 바울을 어렵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이어진 바울의 길은 많은 결실에도 불구하고 지치고 피곤한 여정이었습니다.

강신덕 목사

<토비아선교회, 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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