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단테와 신곡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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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Dante,1265~1321)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르네상스(Renaissance, 14~16세기) 시대의 대표적인 문학인이다. 단테의 대표작은 <신곡(神曲)>이다. 그 외에도 <왕정론(王政論)> <신생(新生)> <향연(饗宴)> 등이 있다. 호머(Homer, BC 800~750경)), 괴테(Goethe, 1749~1832), 세익스피어(W. Shakespeare, 1564~1616)와 함께 단테를 읽지 않고는 유럽 문학의 정수(精粹)를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신곡>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으로 알려져 있다. 중세 유럽의 문화와 철학이 담겨져 있다. 신앙을 바탕으로 이상과 현실, 선악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해 준다. 인생의 도덕적, 영적 성찰을 하게 한다. <신곡>을 읽으면 두려움이 생긴다. 악인의 영혼이 최후의 날에 부활해 당하는 괴롭고 비참한 모습을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개구리가 흙탕물 속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처럼 숱한 영혼이 끓어 오르는 역청(瀝靑) 속에서 머리를 치켜 들고 “단테여! 단테여!” 하고 외치는 장면 앞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움을 느낀다. 사람의 생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언제 꺼질지 모른다. 순식간에 한 방울의 이슬처럼 한 줌의 흙이 되어 버린다. 늙었다고 희망을 버리지 말 것이며 젊었다고 믿을 바가 못 된다. 천지이변(天地異變)이 언제 닥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을 어찌 함부로 즐거워 하고 슬퍼하며 괴로워 하겠는가! 

단테는 감정이 매우 예민해서 9살 때 동갑내기 베아트리체(Beatrice)를 만나 아름답고 고상한 모습에 감동이 되어 어린 마음에 사랑하게 된다. 온종일 집에 틀어 박혀 베아트리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게 되면 온몸의 피가 한꺼번에 황홀감 속에서 뛰었다. 그 소녀의 싱긋 웃는 모습이라도 보이면 그만 기뻐 뛸 듯이 어쩔 줄을 몰라했다.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어 본 일도 없었다. 그러나 차츰 더 그의 정열은 타올랐다. 짝사랑 속에서 홀로 괴로워 하는 동안에 그녀는 그만 시집을 가서 남의 아내가 되었다. 

바라던 새는 훌쩍 날아가 다른 나뭇가지로 가버린 것이다. 단테의 마음 속이 어떠했으랴! 다정다감한 그는 창자가 끊기는 괴로움 속에서 나날을 보냈다. 나중에 도나아테라(DonaArtera)라는 아내를 맞이해 마음의 위로를 얻은 듯 했으나 여전히 첫사랑,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일생 동안 그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베아트리체가 24살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그의 정신은 일변(一變)해 <신생(新生)>을 썼다. 여기서 그의 사랑은 비로소 아름답게 정신화(精神化) 되었다. 그는 절망의 깊은 골짜기에 던져진 느낌이었다. 단테는 자신도 모르게 영혼의 문제에 대한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않고 있는 단테를 보고 어느 날 신부(神父)가 물었다. “무엇을 찾으시오?” “평화입니다.” 그리하여 쓴 것이 불후의 명작 <신곡>이다. 지옥의 괴로움을 썼다. 비참하고 몸부림쳐지는 광경이다. 비참한 신세가 되어 절망에 빠진 영혼일지라도 노력을 쌓으면 이윽고 천국으로 갈 수 있음을 ‘연옥'(煉獄)으로 그려 묘사했다.  천국에서는 완전한 인간이 사는 광경을 노래했다. ‘연옥’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중간 지대로 일부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다. 여기서 회개하면 천국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는 연옥에 관한 기록은 없다.

단테가 이상(理想)으로 삼았던 철학자는 베르길리우스(Vergilius, BC 70~BC 19, 로마의 시인, 철학자)였다. 그러나 베르길리우스의 철학과 지식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곡>은 베르길리우스에게 인도되어 연옥까지는 갔으나 여기서 베르길리우스는 “나는 더 이상 그대를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말한다. 단테는 부득이 베르길리우스를 떠나 베아트리체(사랑)의 도움으로 드디어 천국으로 들어 갈 수가 있었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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