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흔들리고 연기가 기내에 꽉 차서 300여 명의 승객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때 나는 시편 23편을 묵상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저는 아직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저의 생을 여기서 끝마치면 하나님께서 손해보십니다.”
드디어 비행기는 불완전한 상태로 앵커리지 공항에 착륙했다. 지상에 내려와 한쪽 날개가 완전히 타 버린 것을 보면서 탔던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우리 모두는 죽을 뻔했다고 하면서 아찔해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목사입니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앵커리지 공항대기실 의자와 땅바닥에 앉았다. 그곳의 책임자가 와서 노약자와 아이가 있는 분이나 장애인을 제일 먼저 호텔로 모시고 그 외의 승객들은 그 지역을 관광시켜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은 거짓이었다. 먼저 1등석, 2등석의 사람들만 모두 호텔로 보내고 정작 아이 있는 분이나 노약자, 장애인은 내버려두고 아무 대책을 세워 주지 않았다.
그때 나와 함께 동행한 양운국 장로님이 “빨리 해결해 달라”고 소리쳤다. 그제야 그들은 우리를 호텔로 안내해 밤늦게 도착해서 4시간을 자고 귀국했다.
그때 일을 생각해도 아찔하고 소름이 끼친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서 호암 사회봉사상도 받을 수가 있었으니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릴 뿐이다.
애틀랜타행 비행기 승무원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잊을 수 없는 이야기 한 토막이 생각난다. 나는 개안 수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뉴욕을 경유해 애틀랜타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며칠 간 뉴욕에 머물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케네디 공항에 가서 애틀랜타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그 날 따라 주차하기가 어려워 친구는 공항 입구에 나를 내려 주고 짐 부치는 곳에 있는 직원들에게 탑승 수속을 비롯해 비행기 안내까지 도와주라고 부탁하고 돌아갔다.
친구의 부탁을 받은 두 명의 흑인 여성 직원이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휠체어에 나를 태워서 밀고 가고 한 사람은 나의 짐 보따리를 밀고 갔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그 흑인 여성 직원들은 팁 20불을 요구했다. 나는 두말없이 달라는 대로 주었다.
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나를 안내해 준 여 승무원은 키도 크고 얼굴도 아주 어여쁜 미인이었다. 공항에서 나를 비행기까지 안내해 준 두 흑인 여성들과는 매우 대조적이었다. 그 승무원은 내게 안전벨트까지 해주고 비상구 탈출에 대한 설명을 세밀히 한 후 이곳에서 애틀랜타까지 가는 동안 당신의 모든 것을 내가 전적으로 책임질 것이니 마음놓고 편안히 여행하라고 했다.
얼마 후 비행기가 이륙하자 승무원은 내 곁으로 오더니 “어디서 왔으며, 직업이 무엇인지, 무슨 목적으로 애틀랜타에 가는지, 눈은 어떻게 다쳤는지” 세밀하게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하나하나 다 사실대로 알려 주었다.
그녀는 남편이 침례교회 목사였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경험이 있었다고 했다. 그 승무원은 결혼 전에 케근 모임에 참석했으나 결혼 후에는 남편 따라 종교를 바꾸었다고 했다.
그 승무원은 간식도 다른 승객보다 많이 주고 빵에다 치즈까지 발라서 먹기 좋게 주었다. 얼마 후 목적지 애틀랜타에 도착했다. 여 승무원은 다른 승객이 내리기 전에 제일 먼저 나를 출구로 안내해 주었다.
애틀랜타는 그 어느 비행장보다 복잡하고 넓어서 잘못하다가는 방향을 잃기가 쉬운 곳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전차를 타고 10분 간 가야만 출구가 있었다. 그 비행기는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그날 밤에 가게 되어 있었다. 여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날이 마침 수요일이었다. 비행기 도착 시간에 나오기로 한 나의 동역자 박정도 목사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 승무원은 다시 비행기로 돌아가야 하는데 초조하기가 한이 없었다.
걱정하고 있던 차에 그녀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내가 이 비행기의 캡틴 승무원이기 때문에 내가 가야지만 비행기가 떠납니다. 내가 안 가면 못 떠납니다” 하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이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