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도농이 함께 행복한 추수감사절을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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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오후, 바람에 일렁이는 논을 지나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황금물결에 넋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롭습니다. 올해는 쌀농사를 배워보겠다고 「벼의 일 년」이란 책을 따라 논농사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한자 쌀 ‘미(米)’를 파자(破字)하면 팔십팔(八十八)이 되는데,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농부가 논에 들어가는 횟수라고 합니다. 쌀 한 톨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쌀밥과 함께 어울리는 반찬이 있습니다. 김치입니다. 겨울이 다가오기 전 김장을 합니다. 농촌에서 내 손으로 김장을 위한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배추, 무, 쪽파, 갓, 고추 등을 심고 가꾸었습니다. 

고추는 3월 말에 씨를 심어 모종을 만든 후 5월 노지에 심으면 무더운 여름부터 붉게 익은 고추를 따서 씻고 말리고 빻아 고춧가루를 만듭니다. 꼬박 8개월이 걸립니다. 배추, 무, 쪽파, 갓과 같은 채소류는 보통 3개월을 가꿔야 합니다. 

양념으로 쓰는 마늘은 가을에 심어 월동을 위해 왕겨로 두둑히 덮은 후 다음 해 오뉴월에 수확하고, 생강은 4, 5월에 심어 10, 11월에 거둡니다. 김치 한 포기 안에 농부의 일 년이 있습니다.

농부의 일 년은 소득으로 이어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농사가 너무 잘 되면 가격이 떨어지고, 농사가 안되면 식재료 가격은 오르지만 팔 수 있는 작물이 없습니다. 

씨앗을 땅에 심는다고 다 농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농사를 위해 퇴비, 멀칭과 같은 농자재와 농기계를 사용하는 비용이 듭니다. 공장으로 비유하면 생산을 위한 초기비용이기에 빚으로 시작하는 것이 농사입니다.

수확이 끝나고 빚을 갚으면 농부에게 주어지는 돈은 얼마일까요? 농사를 잘 지어도 1평당 1만 원을 벌면 잘한 것이라고 합니다. 농가 일 년 평균소득이 천만 원 이하라고 합니다. 1차 산업의 가격이 오르면 2, 3차 산업이 연쇄적으로 오르기 마련입니다. 

정책적으로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은 농촌에 강요된 희생일 수 있습니다.

농촌의 현실이 이렇다 보니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고, ‘농촌 소멸’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2023년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9%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쌀을 제외한 곡물 자급률은 22.2%에 불과합니다. 식량안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매우 취약한 상태입니다. 농촌을 지키고 농사할 수 있는 환경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배추를 수확할 시기에 일주일 이상 비가 왔습니다. 배추밭에서 무름병이 돌아 농부의 주름이 더 깊어졌습니다. 

밭을 정리하는 어르신께 강장제 한 통을 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평생을 농부로 사신 분께서 매년 농사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마지막 말씀에 눈물이 났습니다.

“그래도 내년을 기대해야지요.”

내년을 기대하며 갈무리하는 농부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여전히 땅에서 희망을 찾는 농부는 하늘의 뜻을 쫓는 구도자(求道者)와 같습니다. 

수고의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데도 누군가의 식탁을 책임지는 농부는 악인과 선인에게 같은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요?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밥상을 찬찬히 살펴봅시다. 

쌀 한 톨의 의미와 김치의 시간 속에 들어 있는 농부의 수고, 땀, 눈물을 기억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립시다. 

감사는 단지 풍요의 기쁨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깨닫는 믿음의 응답입니다. 농촌이 살아야 도시도 삽니다. 

이 추수감사절, 땅의 수고를 기억하는 신앙, 농촌과 함께 생명을 지키는 선교가 다시금 회복되고 농부가 웃을 수 있는, 도농이 함께 행복한 추수감사절이 회복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원영 목사

<총회 농촌선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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