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신앙의 자리] 종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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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으로 문을 연 새 삶 –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의 변곡점”

음악으로 맞섰던 기생들의 장구소리, 명월관에서 복지관으로의 전환 이야기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②

미국 남감리교회 여선교부가 이 건물을 산 것을 계기로 태화관은 단순한 요릿집이 아니라 한국교회사에서 교회가 주도하는 사회봉사를 위한 기관으로써 탈바꿈하게 되었다. 하지만 태화관이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이 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것은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또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즉 태화관을 사용하던 명월관이 당장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명월관 측은 계약기간이 남았다는 이유로 집을 비워주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건물 주인이 매도해 팔린 집이지만 세입자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계약기간 동안은 그대로 영업을 하겠다는 입장이 완강했다. 장사가 잘 되고 있는 상황이고 장안에서 그만한 요릿집을 운영할 수 있는 면적의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수인인 미국 남감리교회 여선교부 측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때 남감리교회 선교사인 마이어즈(M. D. Myers, 마의수)가 주도하는 가운데 태화관을 양도받기 위한 특별한 일을 만들었다.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영업을 방해(?)하는 일을 꾸몄던 것이다. 마이어즈 선교사는 남감리교 소속 전도부인 이숙정, 방화정 등과 함께 태화관의 여러 건물 가운데 한 방에 들어가서 찬송을 계속해서 부르는 것이었다. 일종의 영업방해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과 함께 술도 팔았던 태화관에서 찬송소리가 계속해서 나니까 손님들이 거리끼게 되었고 영업에 상당한 지장이 생겼다. 명월관 측에서는 찬송소리가 손님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기생들을 동원해 밤새도록 장구를 치면서 노래를 했다. 맞불작전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하룻밤의 일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었을 때 어떻게 되었겠는가? 결국 10일 동안 밤을 새워 찬송을 부른 마이어즈 선교사 측이 이겼다. 명월관 측이 포기하고 건물을 양도하게 됨으로써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으로의 탄생이 가능하게 되었다.

  음식점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정돈하고 1921년 4월 4일 태화여자관(현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을 개관했다. 초대 관장은 마이어즈 선교사가 맡았고 태화라고 하는 집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한글로 태화라는 명칭은 泰和(Great Harmony Hall)로 바꿨다. 기독교 사상으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만드는 세상을 이상으로 하는 복지사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명칭이다. 마이어즈는 시작부터 당시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구상했기 때문에 최초의 명칭은 <태화여자관>이라고 했다.

  이렇게 설립 당시부터 태화관은 명월관이라고 하는 음식점에서 기독교 사회복지시설로 변신을 했으며 그곳에서는 유치원, 탁아소, 여자실업학교, 여자성경학원, 요리강습, 재봉, 영어, 식생활개선, 아동보건, 우유급식, 목욕, 청년 직장인을 위한 성경공부, 도서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 등을 운영했다.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은 교회가 직접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대사회에 봉사하는 기관으로서 면모를 갖춘 시설이었다.

  전체 시설이 적은 것이 아님에도 이 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면서 시설이 좁아지게 되었다. 1930년대에 들어와 하루 이용하는 사람들이 500명이 넘으면서 시설이 비좁게 된 것이다. 집은 여러 채지만 한옥이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적었다. 따라서 기와집을 헐고 필요한 새로운 건물을 짓기로 했다. 유적인 건물을 허무는 것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순화궁을 비롯한 건물을 모두 헐고 1939년 11월 연건평 718평 규모의 3층 건물을 새롭게 지었다. 이때 문화재급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고, 특히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던 6호실도 없어졌다. 당시의 상황에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겠지만 이 부분은 많이 아쉬운 일이다. 현재 중앙교회가 있는 하나로빌딩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그러한 역사적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이나 중앙교회가 예배당을 짓는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이때 지어진 건물은 1980년에 다시 헐리고 현재의 건물을 지었으며, 다시 1995년에는 종로를 떠나 수서동으로 옮겨감으로써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의 강남시대를 열었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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