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사랑과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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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어느 의사분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입니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의 환자가 있습니다. 40대 초반의 여자 분이었는데 위암이었죠. 하지만 암(癌)이 전이(轉移)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어요. 그때만 해도 CT가 3cm 단위로 잘라져 나왔으므로 암이 작으면 잘 보이지 않죠. 그러나 일단은 윗분에게 보고를 드려야 했습니다.

아침에 주임과장님에게 “이런 환자가 있었고, 전이가 확인이 안 됩니다.”하고 보고를 드렸더니 “배를 먼저 열어보고 전이가 되어있으면 닫고, 안 되어 있으면 수술을 하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환자의 보호자에게 반드시 동의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이야기해 봤더니, 남편은 죽었고 시댁 식구들은 연락이 끊어졌대요. 

그래서 환자 본인에게 직접 말씀을 드리고 수술 날짜를 잡았죠. 한데 배를 열고 보니 저희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가슴부터 배까지 서리가 내린 것처럼 하얗게 되어 있더군요. 전체가 작은 암세포로 덮여 있었어요. 너무 심각했던 거죠. 바로 닫고 수술실을 나왔습니다. 그런 경우 대개는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게 마련입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하고 다시 환자에게 가보니 침대 옆에 아이 둘이 검정색 교복을 입고 엄마 손 하나를 둘이 잡고, 서 있더군요. 환자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해요. 환자는 알고 있었던 거죠. 수술을 했더라면 중환자실에 있었을 텐데 일반 병실이었으니 암이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죠. 아니나 다를까! 그 환자는 수술 후, 급속도로 상태가 나빠져서 퇴원도 못하고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사망을 앞두고 며칠 동안은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고 병원으로 왔는데, 항상 엄마의 손을 잡고 셋이 함께 있었죠. 환자가 임종에 이르러서 환자 곁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모니터의 심전도가 두세 차례 ‘사인 곡선’을 그리다가 ‘뚜뚜…’ 하면서 멈췄는데 아이들은 여전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죠. 아이들이 울지 않고 가만히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아직 모르나 보다 하고 한 1분 정도 기다렸어요. 

그러다 아이들의 어깨를 가볍게 만졌더니 엄마 손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요. 봤더니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상의의 절반이 눈물로 젖어 있더라고요. 큰 아이가 엄마에게 다가서서 왼팔로 목을 잡고, 오른팔로 어깨를 안아요. 그리고는 엄마 귀에 대고 “엄마 사랑해요!” 하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간호사가 “신부님이 오셨다”고 해서 다소 놀라서, “누구십니까?” 했더니 대뜸 “저를 모르십니까?” 하는데 자세히 보니 옛날 그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웠습니다. 그 때 그 고등학생이, 신부님이 되어 찾아와주다니! 여동생은 교대(敎大)에 진학해 ‘선생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두 오누이가 곱게 잘 자랐더군요. 

다음은 신부의 말입니다. “선생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그때 저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자면 너희들에게는 가혹하고 힘들겠지만, 엄마는 너희들을 남겨두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너희 남매를 걱정했을 것이니, 이런 엄마의 마음을 잊지 말고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거라”하고요. 내가 그때 해준 그 말이 두 오누이가 살아가는데 버팀목이 된 가장 중요한 말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던진 작은 선의(善意)가 두 남매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찡했습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로 어떤 이는 희망을, 어떤 이는 좌절을 겪게 되지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사랑과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을 입에 담아야하는가 봅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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