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모두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린다 하면 너무 과한 말이 되려나 모르지만 실상이 그렇다. 지하철을 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무심히 서 있는데 무언가가 왼쪽 다리를 툭 건드리며 지나간다. 세상에 집채만 한 개가 아닌가? 개라면 강아지 새끼만 봐도 오금을 못 펴는 형편인데 모르고 스쳤기에 망정이지 알았더라면 소리라도 질러서 소란을 피울 뻔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었다.
뒤를 따라 걸으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만일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더라면 지금쯤 오늘 일이 잘 안 풀릴 것이고 매사 답답한 지경을 당할 것이라는 요망한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쑥대밭이었을 텐데 하나님 안에서 살다 보니 이렇게 편안한 마음이면서 저 장애인의 안위까지 기도하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싶었다. 거기 더해 오늘 저 개가 놀라지 않게 태연히 옆을 지나가게 하셨다는 데에 대한 소박한 감사까지 드리고 있으니 이 또한 은혜 아니겠는가?
우리 옛사람들은 아침에 나오다가 시각장애인을 만나면 그날 모든 일이 답답할 것이고 만약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틀림없이 못 만날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중요한 일로 나섰던 길이라면 아예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일까지 다반사였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런 편견으로부터 자유케 되었음은 대단한 은혜이다.
개에 대한 찬사가 끝도 없이 많은 세상이지만 저 인도견은 기막힌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얼마나 훈련을 받으며 사람에 못지 않은 안내 역할을 감당하며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 주고 있을까? 얼마 전 국회의원이 자기의 인도견을 국회 본회의장에 데리고 들어가는 일로 논란이 일었던 일이 있다. 편견이 거의 사라진 때라 큰 문제 없이 인도견이 들어가게 되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편견의 그림자를 보는 일이었다. 그 국회의원은 시각장애인들의 복지 차원에서 반드시 자신의 인도견을 본회의장에 데리고 들어가야 했던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장애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기독인들은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내 곁을 조용히 지나가 준 인도견이 장애인을 잘 인도해 주길 바라며 그 장애인의 행운을 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