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클레르 리델(Felix Clair Ridel,1830~1884)은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으로 1861년(철종 12년) 조선에 입국해 베르뇌 주교 이하 11명의 신부와 함께 천주교 선교에 힘썼다.
1866년 정월 들어서부터 대원군이 병인사옥(丙寅邪獄)을 일으켜 9명의 프랑스 신부와 8천여 명의 조선인 신도를 죽게 하자, 박해를 피해 조선인 신도 11명과 함께 5월 8일 황해를 건너 중국으로 피신했다.
1870년 6월 조선교구 제6대 교구장에 임명되었으며 1877년 2명의 신부와 함께 입국했다가 체포되었다. 그 뒤 일본으로 건너가 요코하마(橫浜)에서 『한불문전(韓佛文典)』의 편찬을 감수했으며, 『서울에서의 옥중기』를 남겼다.
리델의 『경성유수기(京城幽囚記)』에 따르면 감방 구조에 관해서는 작은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었고 밤이 되면 닫혀졌으며, 또한 격자(格子)가 딸린 높은 창이 있어서 바람도 달그림자도 통과했고, 견고한 벽에는 환목(丸木)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고 쓰여져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좌옥(左獄)의 옥사와 같았던 것 같다.
서소문옥(西小門獄)은 일시적인 원인으로 갑자기 죄수가 증가했을 때 임시수용시설로 예전 나라의 창고였던 건물로 편의상 이에 충당한 것이지만, 나중에 이것을 개축해 반영구적 설비를 하고 서소문옥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서소문 내에 있었다. 당해 감옥은 상당히 큰 규모였다. 즉 남감(男監)과 여감(女監)을 구별했고, 남감(男監)은 21실이 있었으며 1실의 넓이는 약 3간(間)으로 20인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넉넉하게 400인 이상의 수용능력을 가지고 있은 데다가 목욕탕의 설비까지도 있었다. 그리고 구조는 포도청옥의 구조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다만, 다른 점은 옥사의 전면에 돌로 쌓은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두지 아니한 것이다. 그 때문에 감옥의 정문을 들어가면 옥사 내에 수용되어 있는 자를 목격할 수 있었고, 따라서 외부와의 교통의 격리는 매우 불충분했다고 한다.
김성기 목사 <세계로교회>
한국교도소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법무부 사)새희망교화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새희망운동본부 대표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