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바르트부르크 성은 현재 멋진 명소이지만, 500년 전인 1521년 5월 4일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기에 완벽한 은신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곳에서 10개월간 턱수염을 기르고 기사 융커 예르크로 변장했습니다. 그는 1517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내건 95개조 논제로 교회의 권위에 도전했고, 1521년 보름스 의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것을 요구받았을 때 “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라고 단호히 선언하며 파문당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성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그는 편지 주소를 ‘높은 성에 둘린 나의 밧모 섬에서’라고 표기했습니다.
루터의 모습에서는 천 년 이상 앞서 살았던 다윗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다윗은 백성을 위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하나님을 위해 살았지만, 시기하는 사울 왕에게 쫓겨 엔게디 광야의 바위 동굴로 몸을 숨기게 됩니다. ‘들 염소’라는 뜻의 엔게디는 피신자들이 숨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사울이 다윗이 숨어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 모습을 본 다윗의 신하들은 그에게 사울을 죽여 복수할 것을 부추기며 “여호와께서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들인 사칭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행태는 500년 전 중세교회의 타락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 교회는 말씀보다 자기 자리와 권력 유지를 중요시하며 막강한 권한을 누렸습니다. 유럽 인구 30명당 1명이 성직자였으며, 조선 초기에도 승려 인구가 50명당 1명꼴로 세금 및 군역 면제라는 세속적 특권을 누렸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기득권을 쫓을 때 나타나는 타락의 민낯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비슷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해칠 수 있었음에도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해하지 말라”는 말씀대로 살기 위해 고심하며 사울을 살려주었습니다.
다윗이 말씀대로 순종을 보인 것처럼, 루터 역시 말씀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택했습니다. 그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 바르트부르크 성에 머물며 단순히 몸을 숨기는 데 그치지 않고, 10개월간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위대한 작업을 해냅니다. 이는 평신도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말씀에 사로잡히는 시대를 연 종교 개혁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다윗과 루터, 이들은 모두 세상의 권력이나 이익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 자로서 각자의 시대에서 역사를 이루어냈습니다.
김한호 목사
<강원노회 노회장•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