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믿음 가문에서 태어난 하용조(1946-2011) 목사는 큰 영성을 남긴 우리나라 훌륭한 모범목사이다. 북한 진남포에서 5세에 하대희 장로 김신일 권사 부모님 따라 6.25 무렵 목포항에 내렸다. 목포에서 초·중등교육을 받고 상경해 대광고교 건국대를 거쳐 장로교신학대학교에 진학 졸업하고 1976년 5월에 통합측 장로회 목포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곧 배우, 코미디언, 가수 등을 구원의 길로 전도하다가 연예인교회(1980)를 세웠다. 연예인 중에 목사 장로 권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대학생 시절에 김준곤 목사 지도의 대학봉사회 간사활동도 7년 하고 영국가서 믿음 공부도 3년간 하고 귀국했다.
하 목사는 꿈꾸고 기도해온 대로 1985년 6월에 12가정을 중심으로 이촌동에 온누리교회를 개척했다. 1987년 7월 17일 건축된 교회 입당예배를 드릴 때 은혜받는 성도들이 7만 5천 명에 이르렀다. 두란노서원(1980) 아버지학교(1997) 어머니학교(1999)를 세워 사도행전적 그 교회 부흥에 기도를 많이 쏟았다. 1995년 3월 21일 제27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영적 예배를 드리십시오”(갈 5:13, 대하 7:11-22) 명설교로 큰 은혜를 베풀었다.
기독교교육면에도 기도와 땀을 많이 쏟았다. 포항 한동대 전주 전주대학교 신동아학원 이사장을 맡아 학교경영에도 은혜를 베풀었다. 이런 일의 뒷받침 기도는 1978년 7월 17일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린 이형기 사모의 열정적인 내조의 힘도 잊을 수 없다.
미국에서 신학교육을 공부할 때 이미 명예문학박사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횃불트리니신학대학교 총장도 역임했다. 온누리교회를 몇군데 설립해 두고 감화 감동 깊은 명설교를 했다. 세계를 안은 온 세계적 대선교사였다. 지금 어지러운 한국교단의 훌륭한 모범목사였다. 그러나 종합병원 별명을 듣는 하용조 목사는 2011년 간암 수술도 일곱 번 하고 끝내 8월 2일 하늘나라 가셨다. 믿음의 큰 일꾼을 잃은 기독교계나 한국사회는 슬픔이 컸다. 사랑과 은혜 많은 하용조 목사는 전도 선교에 획기적 업적을 남긴 바울같은 인물이었다.
하 목사는 전도 중에 한국의 대표지성으로 평가받는 문학평론가 이어령 교수를 일본 동경 종교행사에서 세례를 주었다. 부여고교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 학사, 동대학원 석사 단국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33세에 이화여대 교수가 된 분이 이어령 교수다. 22세에 ‘우상의 파괴’라는 우수 평론을 써서 횃불처럼 등단했다. 한국문단과 학계의 대표 지성인이던 이어령 교수는 대학 동기생 강인숙 교수(건국대 국문과)와의 슬하에 2남1녀를 두었다. 그 귀한 딸 이민하 목사가 미국에 가 살다가 결혼에 실패하고 귀국해 살면서 무신론자 기독교 비판자인 아버지 전도에 힘썼다. 노태우 정권 때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발탁되어 국립국어원 설립, 88 올림픽 기획행사 등 일도 많이 했다. 그러나 그가 장관 재직 중 한글날 법정 격하 일은 유감으로 남는다.
우리 한글문화단체가 23년 만에 오늘날의 한글날을 국경일 공휴일로 되돌려 놓았다. 존경받는 하용조 목사와 이어령 교수의 딸 이민하 목사의 기도와 권유로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 교수는 지성에서 영성으로 변화를 가졌다. 바울이 사울일 때 다메섹에서 하나님 부르심을 받고 사울에서 바울로 변화되듯 이어령도 변화된 것이다.
이어령 교수가 별세 4일 전에 딸에게 남긴 서시에/네가 간길을 이제 내가 간다/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로 시에 하나님 살아 계심을 밝혔다. 하나님 사랑받는 하용조 목사님 하늘나라에서 만난 이어령 교수님은 하 목사님께 반갑게 감사인사 나누었을 것으로 믿는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