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순교의 길, 산정현교회
정일선 목사는 이때부터 순교를 각오했다. 순교자의 길은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정일선 목사는 이미 그 길을 가기로 부름받은 것을 깨닫고 산정현교회에 부임했다.
산정현교회는 이미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 반대로 순교한 제단이요, 얼마 전 김철훈 목사가 공산정권에 의해 순교한 제단이었다.
이 제단을 담임하게 된 정일선 목사는 과거 인자하고 온순하던 성품이 일약 강직하고 용감한 투사형으로 바뀌어 공산당과 영적 싸움을 전개하기로 작정하고 영적으로 무장했다. 산정현교회는 이미 하나님께서 순교자들의 제단으로 정해주신 곳이었다.
순교신앙의 본산, 민족주의 운동의 거점이었던 평양 산정현교회를 북한 공산당이 점령하고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그뿐 아니라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유계준 장로가 해방 후 공산당과의 처절한 투쟁을 전개하던 중 1950년 6월 24일 공산당 정치보위부에 피검되었다가 순교했다. 그뿐 아니었다. 체포된 성도가 많았다. 그리고 순교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성도들은 모두 초조한 중에 기도했다. 정일선 목사는 공산화된 산정현교회에서 지혜롭게 대처해 갔으나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고 유엔군이 북진할 때 공산군에 나포되어 평양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를 눈엣가시처럼 미워하던 공산당은 1950년 9월 26일 밤 평양을 버리고 패주하면서 그가 수감된 평양 감옥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탈출하는 사람은 총으로 쏘아 죽였다. “주님! 부족한 종을 주기철 목사와 김철훈 목사의 뒤로 제물이 되게 하시니 주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와 양 무리를 두고 그는 이렇게 순교했다.
목사가 순교하겠다고 해서 순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순교하지 않겠다고 도망한다고 해서 순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순교자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한 것이었다. 이렇게 순교한 이들이 6·25 한국전쟁 중에 많았다.
산정현교회는 평양 장대현교회와 함께 초기 한반도의 가장 대표적인 교회였다. 우리 민족의 영적 순결을 지켜낸 평양 산정현교회에는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우리 민족의 영적 자존심과 민족의 거룩한 지도력을 지켜낸 평양 산정현교회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북한 땅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묵묵히 순종해 한반도와 한민족을 가슴에 품고 걸어온 지난 세월은 온전히 감사와 은혜뿐이었다.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우리 민족에게 주신 거룩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한민족과 한반도가 되기를 바라고 원하는 마음뿐이다.
한편, 6·25 전쟁이 발발하자 공산 치하를 벗어나 월남한 성도들이 많이 있었다. 산정현교회 교인들이 부산시 용두동에서 산정현교회란 이름으로 천막을 치고 임시예배를 드렸다. 전도사 이일화, 장로 장기려, 장로 박덕술이 중심이었다. 그 후 서울이 수복되자 많은 교인이 서울로 올라왔고, 일부는 부산에 남아 부산 산정현교회 성도들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평양에서 순교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일단 피하게 하셨다.
이승하 목사
<해방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