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아비가일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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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찰의 흑인 과잉 진압 사망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이에 항의하는 미식축구 선수들이 국가 연주 시 무릎을 꿇고 일어서지 않는 운동이 펼쳐졌습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국기에 대한 결례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무릎 꿇기 운동은 스포츠계를 넘어 정치계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뼈아픈 치욕의 무릎 꿇기는 1637년 병자호란 당시였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 무릎 꿇은 학부모들의 모습이 약자의 절규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무릎 꿇기는 약자만이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강자도 무릎을 꿇습니다.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를 방문해 나치 희생자들을 위한 유대인 위령비 앞에서 돌연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침묵의 무릎 꿇기는 독일의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상징하며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무릎 꿇기는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지혜로운 무릎 꿇기를 보여주는 것이 성경 속 아비가일의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1630년경에 그린 ‘아비가일과 다윗의 만남’에서 한 여인이 광활한 자연 속에서 무릎을 꿇은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요?

당시 다윗은 육백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망명생활을 하며 유대 광야에서 약탈자로부터 목축업자들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보호하던 나발이라는 부자는 ‘미련한 자’라는 뜻의 이름처럼 어리석고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양털을 깎는 축제일에 다윗이 정당한 도움을 요청했으나 나발은 “어찌 알지도 못하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겠느냐?”라며 모욕하고 돌려보냅니다. 반면 그의 부인 아비가일은 ‘기쁨의 원천’이라는 이름처럼 재빨리 먹을 것을 준비해 다윗 앞에 나아갔습니다. 아비가일은 무릎을 꿇고 남편의 모든 죄악을 자기에게 돌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무릎 꿇기는 치욕이 아닌, 남편의 어리석음으로부터 공동체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지혜와 겸손의 표현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무릎 꿇기가 치욕이나 항의를 상징할지라도, 아비가일의 무릎 꿇기는 공동체를 살린 구원의 행위였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때로 자존심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는 데서 시작됩니다. 무엇이 정말 소중한지 아는 사람만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무릎 꿇을 수 있는 법입니다.

김한호 목사 

<강원노회 노회장•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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