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참석자
◇ 일 시 : 2025년 12월 2일(화) 오후 1시
◇ 장 소 : 한국장로신문 임원실
◇ 사회자 : 박선용 목사 (총회 순교자기념선교회 수석부회장)
◇ 패 널 : 최상도 목사 (총회 사무총장, 순교순직자위원회 전 전문위원), 도주명 목사 (문용동 전도사 기념사업회 총무), 김병학 장로 (광주제일교회, 총회 사회선교위원회 회계)
부르심의 자리, 5월의 광주
박선용: 오늘 1980년 5월 광주를 신앙 안에서 기억하고, 그 가운데 빛났던 한 신앙인의 삶을 조명하는 뜻깊은 자리에 세 분을 모시게 되어 감사합니다. 특별히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한국장로신문 사장이자 총회 순교자기념선교 회장이신 이승철 장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지난 9월 제110회 총회에서 ‘문용동 전도사 총회 순교자 추서’ 안건이 임원회에서 ‘다시 심사하기로’ 결의된 것은 5.18의 아픔을 신앙으로 보듬는 중요한 진전입니다. 이는 단 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5.18 당시 숭고하게 희생된 신앙인의 삶을 교단의 역사적, 신앙적 유산으로 정립하려는 교단적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주명 목사님, 오늘날 교회가 본질적 부르심을 회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특히 현재 한국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과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주명: 세상은 교회가 사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단순히 교세 감소나 사회적 영향력 축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가 울타리를 넘어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외면받습니다.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빛과 소금일 수 없습니다. 저는 우리 교단이 ‘빛과 소금’의 공적 책임을 가장 치열하게 감당했던 현장이 바로 1980년 5월의 광주라고 믿습니다. 그곳에는 총칼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이웃을 지키려 했던 참된 신앙의 증거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오늘 대담이 그 현장 속 신앙을 통해 교회의 길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박선용: 5.18을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명’을 감당한 현장으로 말씀해 주시니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것을 넘어, 오늘날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5.18의 역사적 진실과 광주 교회의 역할
박선용: 그렇다면 그날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부터 들어보겠습니다. 김병학 장로님, 1980년 5월 당시 광주의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당시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신 분으로서, 그날의 참상과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김병학: 5월 18일, 거리는 공수부대의 곤봉에 피 흘리는 ‘비인간화’의 현장이었습니다. 무고한 시민들이 이유 없이 폭행당하고 연행되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시민들은 주먹밥을 나누고 헌혈하며 ‘대동(大同) 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가진 것을 나누는 모습에서 저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았습니다. 이는 성경적인 “서로 떡을 떼며”(행 2:46)의 모습이었습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 했던 광주 시민들의 모습은 초대교회의 공동체 정신을 떠올리게 합니다.
박선용: 당시 광주제일교회는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교회가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중심을 잡고 어떤 구체적인 활동을 펼쳤는지 궁금합니다.
김병학: 저희 교회는 한완석 목사님을 중심으로 5월 23일 ‘광주시기독교비상구호대책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단순히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의약품과 구호품을 모으고, 사태 수습을 위해 중재 역할을 감당하며 더 큰 희생을 막으려 애썼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앞장서서 계엄군을 만나 호소하고, 부상당한 시민들을 돌보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박선용: 최상도 목사님, 당시 광주 교회들의 전반적인 대응은 어떠했습니까? 역사신학자로서 당시 교회들의 활동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최상도: 5.18 국립묘역 안장 희생자 중 종교확인 194기 가운데 130여 기(약 67%)가 십자가가 새겨진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교회가 침묵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이는 단순한 통계 수치가 아닙니다. 그만큼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들은 예배로 저항했고 ‘구호대책위원회’를 통해 이웃의 곁을 지켰습니다. 강신석 목사님을 비롯한 많은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불의를 규탄하고 정의를 외쳤으며, 성도들은 거리에서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냈습니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과 한국교회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새벽길을 간 이’ 문용동 전도사의 신앙과 결단
박선용: 2부에서는 그 현장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 故 문용동 전도사님을 기억하려 합니다. 도주명 총무님, 문 전도사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분의 삶과 신앙을 가장 가까이에서 연구해 오신 분으로서, 문 전도사님의 인간적인 면모와 신앙적 특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도주명: 문 전도사님은 ‘정치적 인물’ 이전에 ‘진실한 경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밤새워 기도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던 분입니다. 신학교 시절부터 가난한 학우들을 돕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참된 경건’이 ‘환난 중에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임을 알았기에 죽음의 현장에서 십자가의 길을 선택 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개인 구원’과 ‘사회적 책임’을 통합한 우리 교단의 본질입니다. 그는 개인적인 영성 관리와 사회적 실천을 분리하지 않았으며 믿음이 삶으로 이어져야 함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박선용: 김병학 장로님, 교육자의 눈으로 보신 문 전도사님은 어떠했습니까? 문 전도사님과 함께 사역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자로서의 문 전도사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들려주십시오.
김병학: 문용동 전도사님은 신학도였을 뿐 아니라 당시 광주제일교회가 운영하던 야학(성경구락부)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전인적 교육을 실천한 스승이었습니다. 그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청소년들에게 단순히 글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꿈과 희망을 심어주며 올바른 가치관을 세워주는 교육에 헌신했습니다. 평소에는 누구보다 온유했지만 불의 앞에서는 단호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서 ‘신앙’과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었고, 실제로 그는 학생들에게 정직하고 용기 있게 살라고 가르치며 ‘신행일치(信行一致)’의 본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5‧18의 비극적 순간, 그는 평소 가르치던 그 가치를 자신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직접 실천함으로써, 제자들과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 참된 교육자요 신앙인이었습니다.
박선용: 최상도 목사님, 그의 마지막 행동을 어떻게 보십니까? 문 전도사님이 도청에 남아끝까지 저항했던 선택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최상도: 문용동 전도사님의 도청 잔류가 결코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었다고 확신합니다. 가족들이 여러 차례 “지금이라도 나가자”고 권했음에도 끝까지 남으신 것은 그분이 나가면 자신의 생명은 살 수 있지만, 자신이 떠난 뒤 폭발물이 터질 경우 군인뿐 아니라 수많은 시민이 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은 단순한 용기를 넘어 정의(아모스)와 사랑(호세아)을 동시에 붙든 깊은 신앙고백적 결단이었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복음의 요구, 그리고 모든 생명을 살려내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실천하기 위해 문 전도사님은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뇌관을 제거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던 그의 행동은 십자가 신앙의 결단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문 전도사님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타자를 위한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행하신 신앙인, 곧 호세아의 사랑과 아모스의 정의를 분리하지 않고 삶으로 구현한 신앙의 모델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길,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는 십자가의 사랑을 전형적으로 드러낸 증언이었습니다. 따라서 문용동 전도사님의 희생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놓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한 순교라고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순직’을 넘어 ‘순교’로
박선용: 우리 총회는 2016년 문용동 전도사님을 ‘순직자’로 추서했습니다. 이제 그를 ‘순교자’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순직과 순교의 차이는 무엇이며, 왜 문 전도사님에게 ‘순교자’라는 호칭이 합당한지 설명해 주십시오.
최상도: 저는 순교 연구를 전공하고 돌아와 교단의 순교자 추서 규정 초안을 마련하고 헌의해,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기준을 정립하는데 참여한 사람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순직’은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경우를 말하지만 그 직무 자체가 복음 사역이기에 교회는 그 죽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순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직무가 신앙 고백의 행위로 드러나야 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신앙 고백적 행위가 확인될 때 우리는 그것을 순교로 규정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신앙 고백적 행위 안에 다음과 같은 요소가 담겨 있다고 보았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보여주 신 자기희생을 본받아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삶, 그리고 자기를 해하는 이들을 용서함으로 화해를 이루려는 태도입니다. 저는 문용동 전도사님의 죽음이 이러한 신앙적 의미와 성경적 정신에 부합한다고 봅니다.
실 제 로 우 리 교단의 규정도 “신앙적 신념에 따라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죽음을 받아들이는 경우를 순교의 범주에 포함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문용동 전도사님의 죽음은 단순히 직무 수행 중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신앙적 양심과 고백에 따라 타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었습니다. 이는 교회의 전통 속에서 순교로 부르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문용동 전도사님의 죽음은 교단 헌법과 신앙고백에 부합하는 해석일뿐 아니라, 오늘의 한국교회가 반드시 기억하고 지켜야 할 소중한 신앙의 자산입니다.
박선용: 문 전도사님의 행적은 이 기준에 부합합니까? 구체적인 증거와 정황을 들어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도주명: 5월 26일, 친구들과 가족들이 “곧 계엄군이 들이닥친다, 빨리 나와라”고 간곡히 권했지만, 문용동 전도사님은 단호히 “내가 나가면 누가 지키겠냐”고 답하며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당시 도청 지하실에는 엄청난 양의 폭발물이 있었고 이것이 한 번 터지면 광주 시내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문 전도사님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결국 자신의 목숨을 걸고 폭발물을 관리하며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은 단순한 용기가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 고백 없이는 할 수 없는 결단이었습니다. 평생 지켜온 경건과 신앙이 그 새벽,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문 전도사님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기도로 이를 이겨냈고, 끝까지 맡겨진 자리를 지킴으로써 수 많은 생명을 지킨 참된 신앙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박선용: 김병학 장로님, 순교자 추대가 왜 중요한지, 문용동 전도사님을 순교자로 추대하는 것이 한국교회와 우리 사이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병학: ‘순직’은 행위를 인정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 행위를 이끈 ‘신앙’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행동 이면에는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믿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기장 교단이 105회 총회에서 류동운 열사를 순교자로 추서했듯, 우리 교단도 문 전도사님을 순교자로 추서해 자랑스러운 신앙 유산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참된 신앙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5.18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계승하는 중요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박선용: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상도: 문용동 전도사님을 개인의 경건과 사회적 책임을 온전히 통합한 ‘통전적 신앙’의 모델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 고백을 종종 교회라는 공간 안에 가둬 두기 쉽지만, 문 전도사님은 신앙을 삶의 현장에서 끝까지 실천하셨습니다. 그 신앙 고백 때문에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결코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귀중한 믿음의 선배라 부를 수 있습니다.
문용동 전도사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되새기는 일입니다. 그의 삶을 정확히 가르치고 바르게 기억하는 것 또한 오늘을 사는 우리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신앙과 삶이 쉽게 분리되는 이 시대에 문 전도사님의 모습은 신앙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세상 앞에 바르게 서야 하는지를 가장 구체적이고도 정직하게 보여주는 본보기입니다. 그의 삶과 신앙은 오늘의 한국교회에 깊고도 강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도주명: 이번 총회 임원회의 ‘재심사’ 결의는 ‘진실한 경건’의 가치를 인정하는 첫걸음입니다. 남은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문 전도사님의 순교자 추서는 우리 교단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김병학: 문 전도사님의 ‘신행일치’ 삶은 오늘 우리 교회가 이웃을 위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함을 웅변합니다. 우리가 그의 삶을 기억하고 본받을 때, 한국교회는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선용: 목회는 전략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만 가능하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문용동 전도사님의 삶은 그 말씀이 삶이 되고, 기도가 십자가가 되는 참된 경건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분의 순교자 추서는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넘어, 우리 교단의 신앙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다음세대에게 참된 신앙의 길을 가르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총회 임원회의 결의가 차질 없이 진행되어 문 전도사님의 순교자 추서가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오는 2026년 6월 9일 오전 11시 100주년기념관에서 제110회기 69명의 노회장과 상임부위원장들, 그리고 순교·순직자 유가족들이 함께 모여 순교자 추모예배를 드립니다. 자리해 주셔서 함께 은혜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함께해 주신 김병학 장로님, 도주명 목사님, 최상도 목사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