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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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새해에 첫 질문을 하고자 한다. “당신은 원죄에서 죄 사함을 받았습니까?” 두 번째 질문, “당신은 죄를 다스리며 관리하고 살아갑니까? 아니면 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갑니까?” 왜 이 질문을 드리느냐 하면 목회자인 저를 비롯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원죄에서 죄 사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죄의 속성에 사로잡혀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원죄의 출발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라는 사탄의 말 즉,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라는 말에 유혹을 받아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라는 이 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원죄에 대한 죄 사함을 완벽하게 받았지만 내 속에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원죄의 속성은 내 인생에서 주인 노릇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목회하면서 느끼는 감정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장로는 장로대로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좀더 넓게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도 최고가 되려고 한다. 총회장, 이사장, 노회장이 되려고 한다. 어느 부서에 장이 되려고 한다. 권력을 동원하고, 당을 만들고 세력권을 형성하기도 하고 권모술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속성은 작은 교회이든 큰 교회이든, 작은 공동체이든 큰 공동체이든 상관없다. 심지어 가정에서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다. 부부 관계에서,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한다. 왕이 되려고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한다. 

비판하다(헬, 크리노) 라는 말은 심판하다, 정죄하다 라는 의미다. 비판이라는 말은 단순히 옳고 그름에 대해 일반적 판단이나 평가나 충고나 권면 등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비판(크리노)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남을 비판하는 행위는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심판자의 위치에 두는 것과 같은 교만의 행위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앉으려고 말이다. 남을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마음이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것이다. 비판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하는 것이다.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판단하고 평가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는 것으로 연결이 될 수 있다. 왜 불평하고 원망하는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 왜 비판하는가? 남을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왜 못마땅하게 여기는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원죄의 속성 때문이다. 

원죄의 원인이 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은 남 탓을 하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제 우리가 원죄에 대한 죄 사함을 받았다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속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장이 되고 왕이 되려 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 비판하고 정죄하고 심판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봉사,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원죄에서 사함을 받은 사람이라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직분을 가졌든, 어떤 힘을 가졌든 섬기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상열 목사

<경주 벧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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