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평생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지만 다산 정약용의 그 유명한 『목민심서』를 아직 읽지 못했다. 목민관, 요즘 말로 공직자가 가져야 할 정신과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제시한 이 책은 우리나라의 고전 중의 고전이지만, 유교적인 가치관에 입각한 전근대적인 저술이라 생각해서 마음이 끌리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런데 새해 첫날 아침 떠오르는 붉은 해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전통적인 정신이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에 문득 다산 정약용을 떠올렸다. 그가 일상생활 중에 지인이나 가족에게 보낸 글들을 편집한 어록이 마침 곁에 있어 읽기 시작했는데 그의 학문하는 태도, 시와 문학의 의미, 몸과 마음을 닦는 공부, 경제활동의 마음가짐 등에 관해 옛 선인들의 지혜가 가득 들어 있음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의 삶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몇 구절을 다시 음미해 본다. 새해를 맞이할 때는 반드시 그 마음과 행실을 새롭게 해야 한다. 좋은 글은 학문으로 깊어진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에 마치 좋은 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과 같다. 그래서 중용의 덕으로 마음을 기르고, 효심으로 성품을 다스려 공경과 성실을 다할 때 비로소 마음속에 쌓아둔 것이 큰 바다와 같이 넘실거려 세상에 문장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배우기를 즐겨하고 유유자적한 중에 검소함을 실천하는 올곧은 선비의 기개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본보기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히 다음과 같은 놀라운 구절이 있어 조금 길지만 인용해 본다.
‘산에서 지내면서 사물의 이치를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세상 사람들이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쏟고 애를 태우고 있더라. 누에가 껍데기를 벗고 나오면 뽕잎이 먼저 싹튼다…. 갓난아기가 태어나 울음을 터뜨릴 때는 어미의 젖이 분비된다. 하늘은 사물을 낼 때 그 양식도 함께 준다. 어찌 깊이 걱정하고 근심하며 기회를 놓칠까 염려할 것인가? 옷은 몸을 가리면 되고 양식은 배를 채우면 그뿐이다…. 올해 내년을 위한 꾀를 세워도 그때까지 살아 있을 줄 어찌 알겠는가?’
이 구절을 읽으면 누구나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지 않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해 보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다산은 조선의 선비였지만 이러한 예수님의 정신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실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과연 그는 우리나라에 천주교를 최초로 받아들인 이 벽, 이승훈 등과 인척지간으로, 함께 천주교를 깊이 공부하고 나서 세례 신자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1801년 신유박해 때 배교를 함으로써 간신히 사형을 면하고 강진으로 귀양을 떠난 이후, 목민심서 등 수많은 책을 저술했지만 천주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여러 연구에 의하면 다산이 끝까지 천주교 신자로 남았다는 증거가 많다고 한다. 물론 학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견해가 있다는 것을 필자도 잘 안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의 마음에는 늘 기독교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고 믿는다. 그는 성실한 유학자로서 깊이 연구한 끝에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였고, 평생의 저술에서 면면히 나타나는 바와 같이 삶으로 그의 신앙을 실천했다고 생각한다.
새해 벽두에 필자는 우리 선조들의 마음과 삶과 신앙의 발자취를 찾아서 다산의 『목민심서』를 정독해 보려고 한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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