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가족이 둘러앉아 즐기는 윷놀이는 단순한 유희 이상의 긴장감과 희열을 선사하는 민속놀이입니다. 별다른 장비 없이도 수백 년간 우리 민족의 화합을 이끌어온 이 놀이는 상대의 말을 잡기 위해 “잡아라!”를 외치는 어르신부터, 한순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울상이 된 청년들까지 모두를 격의(隔意) 없이 어우러지게 합니다.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윷을 모아 쥐고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며 의기양양하게 너스레를 떱니다. 이처럼 윷놀이는 세대와 형편을 초월해 온 가족이 웃음으로 새해를 시작하게 하며, 단절되었던 마음의 고리를 다시 잇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윷판 위에서 함께 웃고 떠드는 그 시간이 가족 공동체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의 시간이 됩니다.
이 놀이의 뿌리를 살펴보면 그 상징적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해진 윷놀이는 ‘도·개·걸·윷·모’라는 가축들이 밭(田)에서 경쟁하며 뛰노는 형상을 통해 농경과 목축 시대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고(故) 이어령 교수는 이 단순한 놀이에서 우리 민족 특유의 유연한 정서를 발견했습니다. 서양의 주사위가 독립된 숫자로 운명을 결정짓는다면, 윷은 네 가락이 공중에서 서로 얽히고설키며 비로소 하나의 운명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정해진 숫자에 갇히지 않고 관계와 우연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역동성을 잘 보여줍니다. 윷가락이 엎어지고 젖혀지는 짧은 찰나, 우리는 예측 불허한 삶의 단면을 마주하며 겸허해지는 법을 배웁니다.
이처럼 윷놀이를 들여다보면, 윷판은 우리 인생의 정교한 축소판입니다. 앞서가던 말도, 뒤처진 말도 자신이 던진 윷가락의 결과에 따라 순식간에 희비가 엇갈립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생의 윷을 최선을 다해 던질 뿐, 그 낙하지점과 결과는 인간의 통제 너머에 있습니다. 이는 성경 말씀과도 통합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그 모든 결정은 여호와께 있다”(잠 16:33)라고 가르치며 인생의 진정한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또한 윷놀이는 독주가 아닌 팀워크의 예술입니다. 한 마리 말만 잘 나간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마음을 합쳐야 끝내 말판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윷판에 몰입하다 보면 목사라는 신분마저 잊게 되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삶의 섭리와 공동체의 소중함이 우리 영혼을 깊이 울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윷판의 모든 말이 마침내 귀환점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듯, 굴곡진 우리 인생도 결국은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려 영원한 안식처에 닿을 것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소망의 윷을 던질 수 있습니다.
김한호 목사
<강원노회 노회장•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