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에 출간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의 유일한 소설 『말테의 수기』는 화려한 파리의 이면에 감춰진 악취와 질병, 그리고 이름 없는 죽음들을 응시하는 한 청년의 고통스러운 기록으로 시작된다. 덴마크 귀족 가문의 마지막 후예인 주인공 말테는 낭만적인 기대를 안고 파리 도심에 들어서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무너져 가는 건물이 보여주는 가난의 흔적과 부랑자들의 비참한 죽음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소멸할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인지를 목격하며 깊은 실존적 공포에 휩싸인다.
하지만 말테는 이 비정한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책상의 불을 밝히고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본다’는 행위는 타인의 고통과 사물의 본질을 자신의 영혼 안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다. 그는 타자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고 그 심연을 끝까지 응시함으로써, 그 비참한 존재들에게도 깃들어 있는 고귀한 실존의 가치를 발견해 낸다.
말테는 이 과정을 통해 “시는 감정이 아니라 경험이다”라는 예술적 진리에 도달한다. 시는 단순히 솟구치는 감정을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죽음과 고통, 그리고 찰나의 순간들이 내면에서 오랜 시간 발효되어 나의 피와 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탄생한다는 깨달음이다. 파리의 거리에서 마주친 모든 비극적 현상들은 이제 그에게 외면해야 할 오물이 아니라 고귀한 예술적 성찰로 승화시키기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릴케가 묘사한 100여 년 전의 파리보다 더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나,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초연결 사회의 화려한 스크린 이면에는 소외된 자들의 소리 없는 비명이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데이터나 뉴스 속 사건으로만 소비할 뿐, 말테처럼 그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아픔을 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보는 법’을 잊어버렸다.
릴케는 말년에 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랑이란 두 고독이 서로를 보호하고 경계를 지어주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타인의 아픔에 대해 내 방식대로 답을 주려 하지 않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말테의 그 ‘눈빛’일 것이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