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경제발전의 성과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함께 식량위기와 자원위기라는 구조적 위험 앞에 서 있다. 세계 각국이 자국 보호주의에 기반한 자원·식량 전쟁에 나서는 가운데, 경제적 효율성만을 앞세워 농업을 경시해 온 우리의 현실은 심각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농업국이었던 한국은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의 희생과 기여를 바탕으로 성장했고, 오늘날 디지털·AI 시대를 선도하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 반열에 올랐다. 이제 글로벌 경제의 혼돈 속에서 농업에 대한 인식 전환만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농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니라 생명산업이자 환경산업이다.
농업은 식량을 공급할 뿐 아니라 수자원을 저장하고 대기를 정화하며, 고령화된 노동력을 흡수하는 국내자원 의존적 산업이다. 특히 논농사는 여름철 집중호우 시 빗물을 저장해 댐 건설을 대체하는 공공재적 기능도 수행한다. 농민들은 국토를 가꾸는 정원사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농업의 환경·사회적 기여를 OECD는 ‘다원적 기능’, WTO는 ‘비교역적 관심(Non-Trade Concerns)’이라 부른다. 최근 자원과 환경 위기가 심화되면서 농업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식량안보를 넘어 에너지 생산과 자원순환, 환경친화적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비록 농업의 경제적 비중은 크지 않지만, 국가 경쟁력을 보완하는 미래 성장산업으로서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농업 문제는 ‘차가운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접근해야 한다. 최소한의 수준을 넘어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유지·발전시켜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제 농민 소득 향상과 경쟁력 있는 농산물 생산을 위해 정부와 농민단체, 전문가들이 함께 해법을 모색해야 할 변곡점에 서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쿠즈네츠는 “농업을 소홀히 해도 중진국까지는 갈 수 있지만, 선진국까지는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농업은 사양산업으로 인식됐지만, 자원순환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농업이야말로 현재의 환경·자원 위기에 대응하는 미래산업이다. 농업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한 바탕에는 농업이 있었다. 한국의 농업 과학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며, 품질 높은 쌀과 과일, 프리미엄 유제품은 세계가 인정한다. 진정한 선진국은 농업이 강한 나라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필자는 지난해 농림어업총조사에 참여해 농촌마을 300여 가구를 방문하며 농촌의 현실을 직접 마주했다. 지방소멸과 고령화 속에서 70대 이상이 농촌을 지키고 있었고, 60대가 ‘청년’으로 불릴 만큼 인구 구조는 심각했다. 다문화가정과 1인 노인가구가 늘어난 현실 속에서도, 고단한 삶 가운데서 노동의 숭고함과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 세대는 도시 산업에 노동력을 공급하고 저렴한 농산물을 제공하며, 자녀 교육을 위해 자신들의 미래를 희생했다. 그 결과 오늘날 OECD 최고 수준의 노년빈곤이라는 아픈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는 농촌 경로당을 중심으로 문화·돌봄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통합돌봄 사업과 연계해 고독한 노인가구를 보살피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포퓰리즘 공약보다, 오늘의 경제성장을 떠받친 농민들에게 인간다운 노후를 보장하는 실질적 정책이 시급하다. 이것은 특정 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응답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조상인 장로
<안동 지내교회,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