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순교자들 (4) 이성휘 목사 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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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해석과 순교적 신앙… 주기철 목사 향한 결단 증언

그는 오경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율법은 씨앗과 같고, 이스라엘 백성은 땅과 같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옴을 말하므로 이는 땅을 택한 것이라 할 수 있고,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 복된 땅을 향해 시내 산에 오르게 함을 말하므로 이는 땅을 산 것과 같다.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서 율법 받은 것을 말하므로 이는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림과 같고, 민수기는 시내 산에서 출발해 가나안을 향해 광야로 지나갈 때 법을 어긴 자들을 징계해 다스림을 말하므로 씨앗을 가꾸고 김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신명기는 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변두리 요단 동쪽에 있을 때 모세가 이미 받은 율법을 복습 삼아 강연한 것이므로 곧 씨앗을 다시 심는 것이라 하겠다.”

이성휘 교수의 성경해석은 평경가(評經家), 고등 비평가(高等 批評家)의 견해 가운데 후자의 입장에 서서 성경의 내외적 증거를 신뢰하며 말씀의 권위를 강조했다. 또한 본문의 의미를 고찰할 때 문자적, 역사적 의미에 머물지 않고 ‘표상’으로서의 말씀의 의미를 찾아내어 구약과 신학의 연결을 시도했다. 더 나아가 본문이 가지고 있는 종말론적인 의미까지 탐구해 성경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통찰을 제공했다. 그래서 장신대 총장을 역임한 김중은 교수는 이성휘 교수를 “개혁신학의 복음주의 입장에 선 신학자”라고 평가했다.

이성휘 교수는 학문과 신앙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어 나타났고, 순교의 삶으로 이어졌다. 그는 너그러움과 겸손함과 영적인 능력과 신앙을 가진 모세처럼 후대 사람들이 사모하고 본받을 만한 훌륭한 신앙인으로 오늘도 우리 앞에 살아 있다.

이성휘 목사는 1936년 7월 평양 산정현교회에 주기철 목사를 담임 목사로 초빙하면서 환영회를 열었다. 당시 교계는 일본 신사참배 문제로 인해 심한 진통을 앓고 있는 시기였다. 평양의 삼숭, 즉 숭실대학교, 숭실중학교, 그리고 숭의여학교의 세 학교가 신사참배 강요로 인해 야기된 위기를 넘기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교회를 향한 신사참배의 화살은 평양 산정현교회를 향해 우선 집중적으로 겨누어졌다. 산정현교회는 한국교회의 중심 교회로서 민족정신의 총본산처럼 모두가 인식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상황을 지켜낼 자가 과연 누구일까? 주기철 목사밖에 없다는 것이 교계의 중론이었다. 산정현교회 장로인 조만식 장로가 경상남도 마산으로 내려가 주기철 목사를 모셔왔다.

이성휘 목사는 환영사를 하면서 “우리는 산정현교회의 주기철 목사로 환영하기보다는 평양교회의 주인 목사로, 아니 전 한국교회의 주인 목사로 그를 환영하는 바입니다”라고 했다. 이같이 이성휘 목사의 발언에는 주기철 목사의 앞으로의 거취를 시사하는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성휘 목사는 주기철 목사가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신앙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해 한국교회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이승하 목사

<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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