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으로 살아있다] 죽음을 감사하다

Google+ LinkedIn Katalk +

죽음 앞에서는 온 세상이 깃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그러나 죽음으로부터 한 발치만 빠져나오면 다시 세상 근심가마리 급급해진다. 돈 걱정, 자식 걱정, 권세와 명예, 교만…. 세상은 이다지도 떼어놓을 수 없도록 끈적거린단 말인가?

죽음 앞에서만 교만이 꺾인다. 죽음은 고래 힘줄보다 질긴 교만의 고삐를 쥐어틀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임을 하나님은 아시나 보다. 그래서 인간에게 죽음을 선고하신 것일까? 죄의 생산자로 인간이 영원히 산다면 세상은 지옥이 되고 만다. 감사하게도 인간은 죽는다. 그런데 죄성의 은폐에 뛰어나고 자기 미화에 탁월한 인간은 죽음에 감사하지 않는다. 혐오할 뿐이다. 

죽음은 섬뜩하리만큼 삶과 얼굴을 대면하고 있다. 죽음은 자궁에서부터 싹튼다. 삶은 죽음을 목적지로 삼고, 죽음은 삶을 동행한다.

죽음은 인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인간 안에 있고 인간 삶의 핵심이다. 삶과 죽음은 별개의 세상도 아니고, 상종 못할 대립도 아니다. 죽음 없는 삶은 없고, 삶 없는 죽음도 있을 수 없다. 삶과 죽음은 서로 대화하고 서로 필요로 하는 한 덩어리다. 70수는 누릴 것 같다고 해서 삶과 죽음의 거리가 70년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나와 죽음 사이에는 간발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스라엘에 아하시야 왕이 있었다. 그는 다락방 난간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져 부상을 입고 죽었다. 평생 죽음이 나와 멀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자주 교만하다. 죽음은 삶의 그림자이다. 죽음은 그렇게 삶의 그림자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그러나 죽음은 경박한 속인들의 눈에 띄지 않게 감추어져 있다. 불쑥 우리 앞을 가로막고 나서야 우리는 죽음이 인생의 동반자임을 알게 된다. (다음회 계속)

김은진 목사

•홀여성선교회 회장

•마곡성은교회 담임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