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신앙의 자리] 종로 (25) 지워진 공간 위에 새겨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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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 선교사의 두 번째 터전

종로 5가(연지동 136)

이제 종로 답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도록 하자. 지금까지는 종로2가를 중심으로 답사를 했고 4가 쪽으로 가면서 종묘를 들렀다. 이제부터는 연지동 136번지 일대를 답사하려고 한다. 초기에 입국한 선교사들이 정동에 정착하면서 정동이 각 선교부의 거점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동을 벗어나야만 하는 여러 가지 상황이 만들어지면서 장로교회 선교부의 두 번째 거점을 만들게 되는 데 그곳이 바로 종로5가(연지동 136번지) 일대이다.

그중에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은 을미사변(1895, 명성황후 시해) 이후 일본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고자 고종이 왕세자와 함께 비밀리에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사건이 아관파천(1896)이다. 고종은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하고 열흘 동안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다가 그곳에서 나와 경복궁으로 환궁하지 않고, 그의 거처와 집전을 덕수궁(당시 경운궁)으로 정하고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문제는 덕수궁이 정궁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규모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필요한 부속건물들을 지어야 했다.

따라서 덕수궁과 이어지는 정동 동쪽, 즉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살면서 활동하고 있던 지역으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장로교회 선교사들의 활동과 주거영역이 좁아지게 되면서 더 이상 정동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교사들은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주 지역을 찾던 중 종로5가 일대를 눈여겨보았고, 그곳으로 선교부 전체를 옮기기로 함으로써 종로5가는 새로운 선교기지가 되었다. 따라서 연지동 일대에 상당한 규모의 부지를 확보하고 선교부를 옮겼다.

초기 선교사들이 정동에 거점을 확보하면서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서 옛 MBC방송국으로 이어지는 길을 중심으로 서편에는 주로 감리교회 선교부가, 동편에는 장로교회 선교부 중심으로 몇몇 선교부들이 함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동편지역이 덕수궁의 확장과 함께 선교사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자리도 비좁았던 차에 덕수궁의 확장으로 양도해야 하는 상황이 됨으로써 장로교 선교부는 제2의 정착지를 찾아야 했다. 그곳이 바로 연지동 136번지를 중심으로 하는 종로5가 지역이다. 따라서 이 지역은 장로교 선교부가 설립했던 학교들이나 선교부의 중심적인 기구들이 자리를 잡고 1980년대 선교부가 철수할 때까지 이곳에서 사역을 했다.

그러나 이 지역도 처음과는 너무나 많이 축소되었고, 남아있는 선교부와 관련된 건물도 극히 일부뿐이다. 그럼에도 그곳에는 선교사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실제로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종로5가 지역은 가는 곳마다 기독교와 관련된 시설이나 학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선교부 부지들 가운데 매각되어 기업과 단체들의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학교들은 혜화동과 송파구로 이주를 했고, 선교부가 있었던 공간에는 기독교 단체들이 입주해 있는 새로운 빌딩들이 지어졌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기독교회관 건물이다. 한때 이 회관은 한국의 기독교를 대변하는 대부분의 기구들이 입주해있었던 곳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기독교방송(CBS)으로 현재는 목동으로 옮겼지만 1992년 이전까지는 이곳 기독교회관에서 방송을 했다. 

그리고 이 건물에는 한국 기독교를 대변할 수 있는 대부분의 단체들이 입주하고 있었다. 1980년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대한기독교서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기독교시청각교육국, 대한기독교교육협회, 그리고 장로교 통합 측과 기장 측, 대신 측의 교단 본부와 일부 노회들의 노회 사무실이 이곳에 입주해 있으면서 활동했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회관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는 대표적으로 한국장로교회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통합 측을 출발시킨 연동교회가 있고,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관과 여전도회관, 기독교연합회관 등 종로5가에 대표적인 건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빌딩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건물들은 모두 선교부가 자리하고 있던 땅에 새롭게 지은 것들이다. 선교부가 이 땅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었다면 이곳에 이런 건물을 짓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1호선 종로5가역에서 대학로를 따라서 이화사거리까지 가는 왼쪽 편에 있는 연지동은 장로교 선교부가 거점으로 확보한 지역이며, 이곳은 1895년 이후 한국장로교회의 산실로써 선교정책과 선교부의 기관들이 한국 선교를 위해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했던 곳이다. 장로교 선교부가 설립한 학교들도 정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와서 학교로서의 면모를 갖추면서 본격적인 교육 선교의 장으로 활용됐다. 남자학교인 경신학교는 일본이 선교부가 차지한 부지를 탐내 신사참배 문제로 1938년 일시 폐교된 상태에서 1941년 강제로 정릉으로 옮기게 했다가 해방 이후 195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서 그 역사를 잇고 있다. 한편 여자학교인 정신학교는 연지동에 있으면서 역시 신사참배 문제로 일시 폐교했다가 해방과 함께 1947년 다시 문을 열고 이곳에서 1978년까지 있다가 송파구 잠실로 이전해 나갔다. 현재 그 학교들은 이곳에 없지만 정신여학교가 본관으로 사용하던 건물과 선교사들이 사용했던 숙소 한 채가 남아있어서 그 역사를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종로5가 지역을 면면히 찾아보는 것은 한국장로교회의 초기 역사와 선교사들의 사역에 대해서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냥 지나쳤던 곳이지만 이제부터 답사 과정을 통해서 종로5가에 남겨진 장로교 선교부의 족적과 사역의 현장을 찾아보고자 한다. 많이 아쉬운 것은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여러 채의 건물들이 있었지만 현재 선교사들의 족적을 찾아보는 데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대부분 현대식 건물로 새롭게 지어져서 이제는 그 현장을 직접 확인하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나름의 준비를 통해서 역사의 현장을 찾아보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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